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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정치철학연구회
■ 공지사항

물질적 헌정 세미나를 제안하며

by RGCPP-gongbang 2025. 1. 14.

물질적 헌정 세미나 제안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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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헌정 세미나를 제안하며

 

정세에 대한 고찰

 

12.3 친위쿠데타 이후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신속한 대응과 시민들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친위쿠데타를 저지하고 국회에서 탄핵소추 의결이 이루어진 후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판결을 앞두고 내란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란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탄핵 판결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조기 대선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6~17년 박근혜 탄핵정국과 2024~25년 윤석열 탄핵정국 사이에는 뚜렷한 연속성과 더불어 차이점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 사이의 진정한 차이점은 탄핵 이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기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이는 이재명 씨의 민주당이 과연 문재인 정권의 실패를 딛고 그것과 차이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사회운동과 시민들이 과연 이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전망과 실천을 수행할 수 있을지가 두 개의 탄핵정국의 차이화의 핵심 쟁점이 될 것입니다.

 

세미나 주제: 물질적 헌정이란 무엇인가?

 

이런 정세 판단을 배경으로 현대정치철학연구회(이하 현정철)에서는 물질적 헌정(material constitution)에 관한 세미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물질적 헌정 개념은 1930년대 독일의 헌법학자였던 헤르만 헬러(Herman Heller)와 이탈리아의 법학자였던 코스탄티노 모르타티(Costantino Mortati)에 의해 처음 고안된 것으로, 오랫동안 법학계 및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잊힌 개념이었다가 2000년대 이후 유럽과 영미, 그리고 중남미 법학자들 및 철학자들, 그리고 정치학자 및 사회학자들에 의해 재발굴되어 최근 10여 년 동안 비약적인 이론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헌정 개념은 몇 가지의 이론적 함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이 개념은 기존의 근대적 유럽 헌법 개념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및 영미법학, 특히 미국 법학의 영향에 따라 헌법이 개인의 권리 보호 및 사법심사에 초점을 맞추게 된 규범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에 입각하여 도입되었습니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현실(사회)와 독립적인 법적 규범의 타당성 및 체계성에 초점을 두는 기존의 헌법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것은 헌법 체계의 독립성 및 자율성을 가정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40여 년 간의 최근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각 국의 헌법은 여러 차례 근본적인 도전과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무엇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애국법”(patriot act)의 제정과 더불어 헌법의 근본 원리로 간주되는 시민들의 양심과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이 크게 위축된 바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2005년 유럽헌법의 부결과 더불어 유럽연합의 구성이 좌초될 뻔한 위기를 경험했으며, 보통 “이주 위기”(migration crisis)라고 불리는 체제 위기는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 등을 비롯한 유럽연합의 민주주의적 토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2022년 2월에 개시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유럽연합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 모두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했으며, 특히 유럽에서는 2010년대에 전개된 재정위기를 통해 “내부의 식민화”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이러한 위기의 돌파를 시도하려 한다는 비판들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존의 헌법관은, “평등한 자유”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이념을 전제하고 있음에도,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가 산출한 사회적 불평등의 확산과 심화로 인해 사회적 약소자들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불안정해지는 과정에 대하여 헌법이 거의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젠더 폭력 및 차별 등과 같은 사회적 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적 헌정을 제창하는 이론가들은 현실과의 허구적 독립성 및 자율성에 입각하여 헌법 및 법 체계를 사유할 것이 아니라, 헌법 개념 자체를 현실과 법의 상호 연관성을 포괄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이해될 경우 헌정은 독립된 법조문 텍스트로서의 헌법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헌법을 가능하게 할뿐더러 헌법의 기능과 재생산 역시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적 조건들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이 됩니다. 물질적 헌정에 관한 영어권의 논의를 주도하는 이론가들인 마이클 윌킨슨(Michael A. Wilkinson)과 마르코 골도니(Marco Goldoni)는 물질적 헌정의 요소를 네 가지로 제시합니다. (1) 정치적 통일성(political unity) (2) 법원, 입법부, 정부(the executive) 및 행정부(administration) 같은 일련의 제도들 (3) 사회적 관계. 여기에는 계급적 이해관계 및 사회운동이 포함됩니다. (4) 일련의 정치적 목표들. 이 네 가지 요소들은 모두 주목할 만한 논점을 포함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세 가지의 핵심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 우선 이 네 가지 요소는 기존의 형식적 헌법 및 헌정 개념에는 정치적 평등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균열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형식적 헌법관에 따를 경우 모든 법 주체의 평등한 자유가 전제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치 공동체 내의 성원들 사이에는 심각한 차이 및 차별, 그리고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용어법대로 하면 계급적 불평등이 존재하며, 인종적ㆍ민족적 불평등과 차별, 젠더적 불평등 및 차별 등도 오늘날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중대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헌법 및 법 체계 내에서 이러한 차별과 불평등은 기입되어 있지 않으며, ‘개인’을 기준으로 한 규범적 평등의 원칙만 제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등과 차별이 현실의 정치 공동체의 작동 및 재생산, 그리고 변동 및 변혁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형식적인 규범적 기준, 그것도 개인을 기준으로 한 기준만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헌법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존의 헌법관은,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수평적 불평등’(horizontal inequality) 이외에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불평등과 같은 ‘수직적 불평등’(vertical inequality)의 문제에 대해 맹목적이라는 점에서도 문제적입니다. 사회계약론을 기초로 한 근대 민주주의 헌정에서는 통치의 정당성을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찾으며, 이러한 동의 절차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검토하고 규제하는 것을 헌법의 고유한 기능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극적인(negative) 역할에 머물게 되면,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구조적인 분리 및 이를 통한 과두제 지배의 영속화라는 문제는 그대로 방치되어 버리고, 이는 다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헌정 내에서 과두제가 영속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물질적 헌정에 관한 이론가들 중 상당수는 물질적 헌정 개념의 주요 쟁점으로 반과두제 헌정(anti-oligarchic constitution)의 수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 더욱이 바로 이 때문에 기존의 형식적 헌법관은 정치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정치적ㆍ사회적 갈등을,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배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적입니다. 첫째, 이는 정치 공동체 내에 명백히 실존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구조화하는 갈등(그것이 계급적 불평등이든, 인종적, 젠더적 불평등이든 간에)을 외면함으로써 자신이 법적으로 규제해야 할 정치 공동체의 현실적 상황과의 괴리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둘째, 이러한 괴리의 방치는 형식적 헌법관이 정치 공동체 및 사회적 갈등에 관하여 기능주의적인 관점을 암묵적으로 함축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갈등 및 폭력은 무언가 체계의 비정상적이고 오작동하는 상황을 가리킬 뿐, 그것이 체계의 구성적 요소를 이룬다는 점은 사고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고대적인 정치사상만이 아니라 마키아벨리나 스피노자 같은 근대 정치철학자들, 그리고 마르크스나 푸코 또는 앨버트 허쉬만 같은 현대 철학자들이 역설한 바 있듯이, 사회적 갈등 및 적대 또는 폭력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내재하는 것이며 사회적 동역학의 고유한 요소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형식적 헌법관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거나 불편부당한 객관성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이미 특정한 존재론적ㆍ정치적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양한 불평등 및 그것이 표현하는 지배관계의 재생산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다) 여기에서 세 번째 쟁점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문제입니다. 푸코가 고안한 이래 현대 인문사회과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주체화 개념은 물질적 헌정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정치 공동체 내에 다양한 불평등과 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으로 인해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과 적대 및 폭력이 사회에 내재하게 된다면, 헌법은, 적어도 그것이 민주주의적 헌법이라고 자처하는 한에서는, 이러한 불평등과 차별 및 그것이 초래하는 갈등과 폭력에 관해 소극적인(negative) 규제의 기능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의 원리를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불평등 및 그것이 산출하는 갈등과 폭력이 정치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지배의 효과라면 더욱 더 그럴 것인데, 이러한 지배의 현실에 관하여 형식적인 중립을 고수하는 것은 그 지배의 재생산을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헌법이 정치 공동체 내에 내재하는 지배와 불평등, 차별의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해법의 원리를 포함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주체화의 문제에 관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물질적 헌정의 두 번째 함의에 이르게 됩니다. 물질적 헌정의 핵심 쟁점 중 하나로서 주체화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헌법의 주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시에예스 신부의 유명한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이후, 유럽의 근대 헌법관에서 헌법을 포함한 법의 주체, 또는 법의 궁극적인 토대는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 내지 “제헌 권력/구성 권력”(constituent power)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유되었습니다. 시에예스는 구성 권력(pouvoir constituant, constituent power)과 구성된 권력(pouvoir constitué, constituted power)을 구별하면서 구성된 권력으로서의 헌법 및 법 체계의 원천에는 구성 권력으로서의 인민이 존재하며, 헌법을 비롯한 법 체계는 구성 권력에 존재론적으로 기반을 둔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현대 정치철학 및 법철학에서 헌법 주체로서 구성 권력 개념에 관해 가장 체계적이고 영향력 있는 논의를 제시한 사람은 안토니오 네그리였습니다. 그는 1992년 이탈리아에서 출판된 «구성 권력»(Potere costituente)라는 저작에서 시에예스가 제안한 구성 권력을 마키아벨리-스피노자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구성 권력이라는 개념을 현대 정치철학 및 법철학 논의의 중심에 위치시킨 바 있습니다. 특히 네그리는 많은 경우 구성 권력과 밀접하게 사용되는 인민주권 개념은 부르주아적인 정치철학, 따라서 비판적이고 해방적인 정치철학이 아닌 지배를 정당화하는 정치철학에 속하기 때문에 구성 권력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구성 권력 개념에 고유한 해방적 성격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네그리의 작업은 이후 마이클 하트와 공동 저술한 일련의 저작들, 곧 «제국»(2000), «다중»(2004), «공통체»(2008), «어셈블리»(2017) 같은 저작에서 다중(multitude)의 정치철학으로 확장됩니다. 구성 권력을 기반으로 한 네그리의 좌파적인 제안은 이후 물질적 헌정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윌킨슨과 골도니의 작업 역시 네그리의 제안에 상당히 영향을 받았으며, “반과두제적”(anti-oligarchic) 헌정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여러 작업에도 역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물질적 헌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구성 권력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입장들도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입장이 주목할 만합니다. 발리바르는 네그리와 더불어 물질적 헌정에 관한 현대적 재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2001년 출간된 «우리, 유럽의 시민들?»에서 “시민권 헌정”(constituion of citizenship, politeia)이라는 개념을 통해 물질적 헌정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한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리바르는 구성된 권력에 대한 구성 권력의 우위, 또는 헌정(constituion)에 대한 봉기(insurrection)의 우위라는 측면에서는 네그리에 동의하지만, 네그리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는 네그리와 달리 발리바르는 봉기와 헌정의 관계를 대립적이거나 외부적인 관계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양자 사이에는 변증법적인 관계가 존재합니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은 인민대중의 봉기적인 힘에 의해 발생했고 혁명의 결과 새로운 공화국 헌정이 수립되었습니다. 물론 이 공화국 헌정은 혁명을 일으키는 봉기적 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고, 오히려 그 봉기적 힘을 억압하거나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봉기적 힘이 헌정을 가능하게 한 근거로서 계속 헌정 내부에 상징적으로 기입되었으며, 지속적인 해방의 정치의 원천으로 작용했다고 이해합니다. 

 

둘째, 더 나아가 발리바르는 봉기적 힘 자체가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구성 권력의 봉기적 역량은 확실히 지배 관계를 해체하고 대중들이 예속자 내지 신민의 지위에서 평등한 시민들로 구성될 수 있게 해주는 해방의 힘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봉기적 힘은 자기 자신이 가능하게 한 시민권 헌정을 위협하고 동요하게 만들고 때로는 해체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따라서 대중들의 구성 권력 또는 봉기적 역량이 없다면 시민권 헌정은 과두제로 나아가게 되겠지만, 시민권 헌정이 없는 봉기적 역량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무정부주의적인 것, 따라서 파괴적인 힘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구성 권력이 민주주의적인 창조력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질서가 필요하지만, 역사적 과정이 증명하듯이 이 후자는 전자를 탈-민주주의화하게 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적인 구성 권력과 시민권 헌정(구성된 권력) 사이의 이러한 이율배반은 민주주의란 특정한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과정의 이름이라는 것, 곧 민주주의란 민주화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민주화는 항상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키아벨리적인 “혼합헌정”(mixed constitution)의 관점에서 단일하고 통일된 주체성을 함축하는 구성 권력론 대신 “군주, 귀족, 인민”의 3각 세력관계의 관점에서 물질적 헌정의 의미를 재해석하려는 흥미로운 시도들도 존재합니다.

 

물질적 헌정 개념의 정세적 의미

 

물질적 헌정 개념은 12.3 친위쿠데타 이후 한국의 현실 정세를 사고하고, 더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사고하는 데도 중요한 방법론적 토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가 직면해 있는 다중적 재난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쟁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다중적 재난이 현재의 한국 및 한반도 상황에서 긴급한 쟁점으로 현상하는 불길한 징후들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뉴라이트의 약진이 심상치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에 처음 등장한 뉴라이트는 박근혜 정권기에 국정교과서 발행을 시도하면서 위협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촛불집회 및 박근혜 탄핵 이후 국정교과서 발행 시도가 좌절되면서 뉴라이트는 와해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5년만에 촛불정권을 자임했던 문재인 정권이 몰락하고 새로 집권한 현 정권 아래에서 뉴라이트는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정부의 주요 기관 및 위원회에 폭넓게 포진함으로써 단지 재야 세력 내지 운동 세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통치의 한 축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2024년 8.15 기념식을 두고 벌어졌던 건국절ㆍ광복절 논쟁 및 김구의 폄훼와 이승만의 숭상 움직임은 단지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만약 12.3 친위쿠데타 및 윤석열 탄핵이 없었다면, 해방 80주년, 한일협정 60주년,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 120주년, (뉴라이트에게는 특별히 중요한) 이승만 출생 150년을 맞이하는 2025년에는 아마도 뉴라이트의 한국 근현대사 다시 쓰기 작업, 따라서 수구 반공주의적 우파 세력의 역사적ㆍ정치적 정당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 뉴라이트가 사라질까요? 아마도 확실히 얼마간 타격은 입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뉴라이트는 단일한 세력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는 여러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세력들은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염두에 둔 지배세력은, 재벌을 비롯한 경제적 지배 세력이 한 축을 이루고 있고,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한 수구 우파 정치 세력이 다른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고, 보수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 세력이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으며,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과 학계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세력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핵심 기득권 세력으로, 1987년 민주화 및 1997년 헌정사 최초의 정권 교체에 뒤이어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의 연속 집권을 경험한 뒤 엄청난 위기감 속에서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한 민주당 중심의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반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 이데올로기적 결속력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뉴라이트였습니다. 따라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뉴라이트는 소멸하지 않으며 자동적으로 약화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뉴라이트는 한국 사회의 구성적 요소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것은 유럽이나 미국 또는 중남미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번성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도 마찬가지이지만, 뉴라이트 현상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한국의 정치공동체, 따라서 물질적 헌정의 두 가지 요소를 대표하는 세력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는 분단과 한국전쟁 시기에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던 민간인 학살을 중심으로 한 국가폭력이며,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적 지배입니다. 뉴라이트는 기원에서는 국가폭력과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지배관계의 핵심을 이루는 신자유주의와도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오늘날 한국의 물질적 헌정 및 그것에 기반을 둔 지배 체제와 불평등 및 차별 구조의 핵심을 이룹니다. 따라서 우리가 뉴라이트 현상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이런저런 주장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들이 증상으로서 표현하는 물질적 헌정의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며, 바로 이러한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그들이 수행하는 실천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둘째,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물질적 헌정이라는 개념이라는 개념의 또 다른 의미는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위상 및 정치적 성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배적인 이해 방식은, 지난 1979년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수상이 되고 그 다음해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영미의 지배적인 경제 정책 및 그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게 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된 신자유주의는 세계화, 금융자본의 우위, 자유방임 시장, 효율성에 대한 맹신 등으로 환원될 것이며, 때로는 비정규직의 확산, 공기업 민영화 그리고 경쟁 논리, 각자도생 같은 이런저런 이데올로기 내지 현상들과 결부될 것입니다. 하지만 푸코가 처음 제안한 바 있고, 최근의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명료하게 보여주듯이 신자유주의는 40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17년 러시아혁명에 맞선 정치적ㆍ경제적 반동의 장구한 흐름이었으며, 그 자체가 물질적 헌정의 핵심 요소로 기능해왔습니다. 이는 흔히 경제학자들로 간주되는 신자유주의의 주요 사상가들,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독일 질서자유주의의 대표자들인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 빌헬름 뢰프케(Wilhelm Röpke), 알렉잔더 뤼스토우(Alexander Rüstow) 같은 이들이 동시에 반민주주의적인 정치를 추구했던 (극)우파 정치학자들 및 법학자들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들은 단지 시장경제의 신봉자들이었던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성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파괴하려고 했으며, 이를 헌법 자체의 수준에 기입하려고 했던 공격적인 (극)우파 정치가들이기도 했던 것이죠. 이것은 이론적인 정교함이나 체계성은 다소 부족하다고 해도 뉴라이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뉴라이트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슨 독트린을 갖고 있고 어떤 주장을 하는가 여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조직적인 연관성을 갖고 어떤 일을 하는지, 그것이 한국의 물질적 헌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세미나 내용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현정철에서는 물질적 헌정에 관한 연구와 번역 작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일차적으로 이번 세미나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룰 계획입니다(이후 계획은 추후 확정).

 

1. Marco Goldoni & Michael A. Wilkinson, “The Material Constitution”, The Modern Law Review vol. 81, no. 4, 2018.

2. Marco Goldoni & Michael A. Wilkinson, “Introduction”, in Marco Goldoni & Michael A. Wilkinson eds. The Cambridge Handbook on the Material Constitu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3. Marco Goldoni & Michael A. Wilkinson, “The Tradition of the Material Constitution in Western Marxism” in Ibid.

4. Jens Meierhenrich, “The Soul of the State: The Question of Constitutional Identity in Carl Schmitt’s Verfassungslehre” in Ibid.

5. Martin Loughlin, “Laski’s Materialist Analysis of the British Constitution” in Ibid.

6. Lucia Rubinelli, “The Constitution in the Material Sense According to Costantino Mortati” in Ibid.

 

세미나 일시·장소 및 유의사항

 

일시: 2025년 1월 22일(수)부터 격주 진행(오후 7시 시작)

장소: 현정철 세미나실(서울 마포구 동교로 41 2층)

유의사항: 이번 세미나의 목적은 한국에 널리 소개되지 않은 전문적 주제에 관한 연구 및 번역·출판이므로, 해당 주제에 대한 교양 수준의 학습을 원하는 분, 영어 원서를 번역할 수 없는 분 등은 참가가 제한됩니다.

정원: 10명 내외(장소 등의 제약이 있어 신청자가 많을 경우 현정철에서 연락드린 분들에 한해 참가가 가능합니다)

참가비: 없음

참가신청: https://forms.gle/Wv17AQ1SCqT5k5m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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