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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工房 강좌/진태원의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읽기

스피노자 철학의 시작과 끝 ― 지성의 교정에서 정치의 개혁으로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34385.html

스피노자 철학의 시작과 끝
: 지성의 교정에서 정치의 개혁으로

― 스피노자 «지성교정론», «정치론» 새국역본 서평. «한겨레» 2020년 3월27일치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국내 철학계 ‘스피노자 르네상스’ 흐름 속에 나온 신뢰할 만한 국역본
다중의 절대적 역량과 정치적 지성 교정 요구하는 질문 던지는 고전

 

스피노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스피노자는 철학 전공자들에게는 범신론 철학자로 알려져 왔고, 일반 대중에게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사실은 스피노자와 전혀 무관한)의 저자로 기억되어 왔다. 하지만 정작 국내 철학계에서 스피노자 연구는 거의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사논문은 고사하고 석사논문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지금은 10여 명을 훌쩍 넘는 스피노자 연구자들이 존재하며, 스피노자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서와 개론서들, 연구 논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같이 현대 유럽철학을 이끌어온 대가들이 스피노자 철학을 자기 사상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그들의 작업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그것은 이제 철학 분야를 넘어 정치학, 사회학, 법학, 문화이론, 페미니즘, 기술철학, 심지어 경제학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리고 역량, 평행론, 코나투스, 변용, 정서, 적합성, 다중 같은 스피노자 철학의 주요 개념들은 인문사회과학의 공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가히 스피노자 르네상스라고 할 만한 흐름이다.

사무엘 히르첸베르크(1865~1908)의 ‘파문당한 스피노자’(1907).

그럼에도 한 가지 매우 아쉬웠던 점은 스피노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나 교양 독자들이 참조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스피노자 저작의 국역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번에 출간된 이 두 권의 번역서는 이러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시의적절한 역작이라고 할 만하다.

이 두 권의 책은 스피노자 철학의 시작과 끝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시간상으로 그렇다. «지성교정론»은 스피노자가 쓴 최초의 저술 중 하나이며, «정치론»은 스피노자가 끝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 마지막 저술이다.

그 다음 주제상으로도 그렇다. «지성교정론»은 ‘나’라는 화자(話者)가 어떻게 정욕, 부, 명예와 같은 헛된 선의 탐닉에서 벗어나 철학의 길 또는 진정한 좋음을 추구하는 길에 접어들기로 결심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작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나’라는 화자는 스피노자일 수도 있고, 인생의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일 수도 있다. «지성교정론»은 이러한 진정한 좋음을 얻기 위해서는 최고의 완전성에 도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지성을 교정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지성을 교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본래 주어진 지적 능력을 적절하게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참된 관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참된 관념들을 연역해가는 길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곧 철학의 시작이다.

반면 «정치론»은 철학자들을 비난하고 정치가들을 찬미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인간의 실제 모습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이상적인 인간성에 기반을 둔 유토피아를 제시해왔을 뿐이다. 또한 철학자들은 기쁨, 슬픔, 사랑, 미움, 시기, 연민 등과 같은 인간의 정서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했을 뿐, 그것들이 자연적인 사물들과 동일한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전개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울러 정치란 정서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반대로 마키아벨리와 같은 정치가들은 인간은 불행한 사람을 동정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을 질투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게 되어 있고, 이로 인해 인간 사회에는 수많은 갈등과 폭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있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정치적 사안은 정치가들의 통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정치란 진리가 아니라 다중의 욕망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로 스피노자는 국가의 토대는 다중의 힘에 있으며, 민주국가가 완전히 절대적인 국가인 이유는 평범한 다중이 그 직무를 맡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론»의 묘미는 한편으로 다중의 역량을 이처럼 신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최고 권력이 다중에게 넘어가는 일은 최대의 변화이며 가장 위험한 변화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가 또는 사회적 관계 자체의 해체를 가져오는 일이다. 이러한 다중의 아포리아야말로 스피노자가 정치가의 통찰에서, 더 근원적으로는 다중의 절대적 역량에서 발견한 철학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적 지성의 교정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흔히 스피노자의 대표작을 «윤리학»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윤리학»이야말로 존재론, 인식론, 인간학, 정서이론, 윤리학 등을 망라하는 스피노자의 필생의 대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은 «윤리학»에서 시작하지도 않고 «윤리학»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윤리학»은 닫힌 작품이 아니라 무한하게 열린 텍스트라는 뜻이다. «지성교정론»과 «정치론»은 그 무한한 텍스트의 입구 아닌 입구이자 출구 아닌 출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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