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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22)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인정받으려면, 국가의 기억에 편입돼야 하는 모순

by RGCPP-gongbang 202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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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272129005&code=960100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22)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인정받으려면, 국가의 기억에 편입돼야 하는 모순

 

김성례 | 서강대 명예교수

 

제주4·3 사건의 ‘위령’

2009년 제주공항 유해발굴터에서 열린 4·3해원상생굿. 이 같은 굿은 4·3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후대에 강력한 정서적인 경험(힘)을 줌으로써 세대를 넘어선 기억의 유형을 만든다. 김성례 교수 제공

 

암매장 뒤 발굴된 유해의 현전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책무감을 줘
학살에 대한 기억 대면하게 하고
4·3영령으로서의 지위를 획득

지난 20세기는 대량살상의 시대였고 냉전체제의 구축이 지배적인 역사를 차지한다. 포스트콜로니얼 경험을 공유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신생국가에서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인해 내전을 겪으며 국가폭력에 의한 대량살상과 사회적 파괴가 공동체 의식과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했다. 제프리 알렉산더는 이러한 상태를 심리적 트라우마와 구별하여 ‘문화적 트라우마’라고 정의한 바 있다. ‘문화적 트라우마’는 집단성원들의 집단의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참혹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영속적으로 존재하며, 미래의 정체성마저 근본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방식으로 변화시켜왔다는 집단적 감정이 지배적일 때 발생한다. 문화적 트라우마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사건’의 기억과 증언에 의해 정치적으로 활성화된다. 여기서는 한반도 냉전체제와 한국전쟁의 전초로 알려진 제주4·3사건과 그 이후에 대한 ‘문화적 트라우마’의 기억을 활성화하고 전승하여 트라우마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애도와 위령의 의례적 매개 기능에 주목하고자 한다.

2020년 72주년을 맞은 제주4·3사건은 냉전체제의 폐허로 남아 있다. 대량살상의 희생자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하는 시왕맞이굿과 조상제사와 같은 개별 가족의례, 제주공항 유해 발굴 프로젝트에서 발굴된 시신의 장례와 재매장, 봉안관 안치 등 공적인 차원의 위령의례에서, 4·3 희생자의 죽음의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 의례적 연행을 통한 기억의 작용은 이른바 마리안느 허쉬의 포스트기억이다. 포스트기억은 “강력한 정서적인 힘으로 세대 간의 혹은 세대를 넘어서 전승된 기억의 유형”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가능해진 4·3의 공식적인 위령제 활동이 전개되기 이전부터 제주의 심방(샤먼)은 죽은 희생자의 영혼을 접신하는 굿의례를 통해 대량살상의 기억을 환기하고 개별 가족 단위로 전승하는 역할을 해왔다. 2002년부터 매년 심방들이 제주도 4·3희생자유족회와 함께 집단살상 현장을 찾아 수행하는 제주4·3해원상생굿은, 집단암매장터의 유해 발굴과 유해의 4·3평화공원 봉안관 안치와 더불어 문화적 트라우마를 전승하는 제주 지역공동체의 공식적인 의례로 자리매김하였다.

여기서 ‘4·3’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적 기억과 4·3 피해 당사자 개인과 가족의 기억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은 ‘4·3의 기억’을 재현하는 포스트기억의 범위와 다양한 매개 양식의 위계적 관계에서 발생한다. 4·3의 모든 피해자가 ‘희생자’의 신분을 자동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희생자’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 위하여, 피해자의 기억은 국가의 기억 안에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는 모순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 여기서 죽음의 윤리적 가치를 판단하고 위계화하는 의례적 경합의 정치학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제주4·3의 문화적 트라우마의 전승과 관련하여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4·3 희생자와 시신에 대한 문화적 믿음과 도덕적 관념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의례적 경합의 정치학과 탈냉전 시대의 기억의 윤리에 대하여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2007년 제주공항 암매장지 유해 발굴터에서는 4·3유족회 주도로 제사가 올려졌다. 하나의 긴 유골상자가 놓였는데 각기 다른 상자에 머리, 몸통, 양팔, 양다리, 양발을 따로 담아 한 사람의 온전한 유골 형태로 구성한 것이었다. 이 유해는 한 사람에 속한 것인가? 여러 사람의 유해 파편을 모아 한 사람의 것으로 만든 것인가? 이 광경은 일종의 ‘희생자 예술’의 포스트메모리 작업으로서 참여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정서적 효과를 가진다. 우리는 희생자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이러한 희생자 예술의 효과는 폭력적인 죽음에 대한 공감을 요청한다. 4·3 희생자의 시신과 유골은 물질적 증거로서, 살상의 책임과 처벌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야기하는 정치적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시신의 윤리적 속성은 집단살상의 희생자 가족과 친족, 지역공동체의 문화적 트라우마의 기억과 전승 작업을 통해 활성화된다.

암매장 장소에서 발굴된 유해의 현전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책무감을 지움으로써, ‘죽음 자체’(시신)를 목격하고, ‘죽은 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고, 그가 얼마나 부당하고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는지 학살에 대한 ‘기억’을 대면하게 한다. 더 나아가 희생자는 제사를 모실 수 없는 ‘유령’으로부터, 다른 조상들과 나란히 자리하며, 햇볕에 깨끗이 말려진 유골의 형태를 갖추고, 제사를 모실 수 있는 ‘조상’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실종되거나 잊혔던 반사회적 ‘폭도’에서 부당하게 국가폭력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는 공식적 인정을 통해 4·3의 원혼은 ‘4·3영령’으로 호칭이 바뀐다. 개별적인 제사 대상이 집단적·공식적 위령의 대상으로 정치적 지위도 변화한다. 지난 70여년간 제주도 역사에서 흔적이 사라졌던 4·3 희생자들은 4·3굿, 4·3비석, 암매장지 유해 발굴과 재매장, 조상제사와 공식 위령제 등 의례적 매개를 통해 ‘제자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제주공항 유해발굴터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는 모습. 양조훈 4·3평화재단이사장 제공

 

모든 영혼이 추모대상 되진 못해
‘빨갱이’로 낙인찍힌 피해자들은
유해발굴 뒤 귀환도 환영 못 받고
‘불량위패’라며 삭제 수모 겪기도

역사적으로 소외된 이들이야말로
피해자의 고통을 최우선시하는
탈냉전 시대‘기억의 정치학’으로
패러다임 변화 이끌 출발점일 수도

그러나 제주4·3의 모든 피해자 영혼이 추모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빨갱이 또는 무장대 지도자로 낙인찍힌 ‘특별한’ 4·3 피해자들의 경우 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 곳곳에 ‘불량위패’라 하여 수백개의 위패가 삭제되었는데, 이들은 족보에 오르는 것도, 유해 발굴 후 집으로의 귀환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냉전체제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역사적으로 소외된 위치에 있으므로,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모든 망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관계없이 동등하고 영속적으로 존중받는 새로운 기억의 정치적 인식체계 안에서 추모되어야 할 대상일 수 있다. 제주4·3 ‘불량위패’ 사례는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포스트기억의 패러다임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대량살상 피해자에 대한 이러한 고려는 피해자의 고통을 최우선으로 다루는 윤리적 실천이다. 저서 <트라우마의 제국>(2009)에서 디디에 파생은 모든 피해자에 대한 우선적 고려야말로 인간 사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포스트기억 정치학에서 트라우마의 피해자는 문화적·정치적으로 존중할 만한 대상이 되며, 트라우마 자체는 일종의 견고한 도덕적 범주가 된다.

제주4·3 ‘시국’의 문화적 트라우마에 대한 인정은 ‘회복적 정의’(reparative justice)를 위한 정치로 연결된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갈 곳 없이 떠돌던 4·3학살 희생자의 시신은, 유해 처리에 대한 적절한 요구와 대응을 촉발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며, 피해보상을 위한 정치적 행동을 ‘활성화한다’. 죽은 자의 존재가 유골을 통하여 산 자에게 인식될 때, 유해는 단순히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물질적 현상만이 아니다. 이 경우, 산 자와 구천을 떠도는 죽은 자 간의 관계를 해방시키는 ‘경계를 넘나드는’ 흐름, 즉 시체에서 유해로, 유령에서 조상으로, 폭도에서 ‘희생자와 영령’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이른바 포스트기억의 정치학이 전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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