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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손호철의 발자국

<22> 세월호는 우리의 불안한, 위험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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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3116350003256

 

손호철의 발자국 <22> 진도 팽목항

세월호는 우리의 불안한, 위험한 미래다

 

편집자주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역사적 장소와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는 ‘한국근대현대사 기행’을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한다. 코로나19시대 '의미있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새벽 물안개가 자욱히 내려앉은 팽목항.

'진실을 인양하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울돌목은 평소 글이 막히거나 세상사가 답답하면 즐겨 찾는 곳이라, 진도대교 앞에 도착하면 으레 좌회전해 우수영으로 들어간다. 눈을 감고 울돌목의 울부짖는 회오리 바다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름 없는 민초들의 신음, 환호, 함성 등을 듣는 것 같아 힘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진도대교를 넘어 진도로 들어섰다. 다시 40분을 달려 팽목항에 도착하자, 새벽안개 속에 나를 맞은 것은 빛바랜 이 구호들이었다. 박근혜정부 시절 여러 비극적 사건과 실정이 있었지만, 그 으뜸은 2014년 4월 16일 인천항을 떠나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생 등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의 비극이다.

새벽 팽목항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처럼 물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물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며 텅 빈 부둣가에 앉아 있자 바다에서 어린 학생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안개가 걷히자 세월호 현장의 상징이 된, 노란 띠를 두른 빨간 등대가 눈에 들어오고 임시분향소로부터 기념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가슴을 뭉클하게 한 것은 위에 녹슨 쇳조각이 달린 부서진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에 검은 페인트로 쓴 ‘세월’이라는 글씨였다. ‘세월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게는 지나가는 ‘세월’로 읽혔다. 비극적인 사건도 이제 6년이 지나 7년을 향해 가고 있다.

 

진도 팽목항의 부서진 시멘트구조물 위에 쓰여진 '세월'이란 글자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동안 검찰조사로 선장, 해경관계자 등이 처벌을 받았다. 검찰은 무리한 증축과 과적으로 배의 복원성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배 인양 후 과적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특별조사위(특조위)를 만들었지만 보수세력의 사보타주로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 했다. 선체 인양 후 문재인 정부가 선체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재조사했지만 원래 배의 복원성이 낮았고 방향타 벌브까지 고장 나 침몰했다는 ‘내부 원인설’과 잠수함 충돌과 같은 ‘외부 충격설’이 맞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19년 출범한 2기 특조위(사회적 참사 특조위, 사참위)는 해경이 현장기록인 CCTV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진상규명을 하고 있으나 수사권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30여명의 학생들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탈출한 ‘세월호의 영웅’ 김성목씨가 수사권을 가진 특수수사본부 설치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목숨을 건 48일간의 단식투쟁을 하다 실려갔다. 이 단식과 유가족들의 농성 등으로 국회는 지난 연말 조사기간을 늘리고 조사 기간 동안 공소시효를 중지시키는 한편 증거조작에 대해 특검을 실시한다는 세월호 특검법을 제정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특검의 대상이 CCTV와 DVR 조작에 제한되어 있고 수사권대신 영장청구권을 부여한 것이 안타깝다.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증거조작과 구조실패의 원인규명, 그리고 관련자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이제는 찾는 이 없는 팽목항.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랑리본 아래 누군가 놓고 간 인형들이 애처롭다.

 

그동안 대형 사고는 여럿 있었다. 대형 항공사고들로부터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등이 있었다. 해상사고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3년의 서해훼리호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사고도 세월호와 같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피해자의 다수가 모두의 아들딸 같은 고등학생, 그것도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충격에 빠진 진짜 이유, 세월호가 중요한 이유는 세월호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 뒤에 숨겨진 한국사회의 치부와 현주소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부의 주장과 달리, 세월호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사고도 사고지만 충격적인 것은 구조과정이다. 언제나 촌철살인의 논평을 해온 고 노회찬 의원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위기를 벗어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타이타닉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세월호 방식이다. 타이타닉 방식은 여성과 노약자 우선 구제다. 세월호는 선장, 항해사 등 강자 우선이다. 한국사회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학생들을 방치하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행동한 선장과 간부선원들, 구조책임이 있는 해경과 청와대 등 정부의 무책임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경도, ‘유신 공주’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해경은 현장에 도착하고도 배가 뱃머리만 남기고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퇴선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국민을 구해야 할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표적인 보수언론까지도 “침몰하는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전국의 광장을 메운 시민들의 탄핵시위에서 “이게 나라냐”는 구호가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팽목항의 상징인 붉은 등대가 외롭게 서 있다.

 

세월호의 상징인 빨간 등대를 바라보고 있자, 독일의 울리히 벡교수의 '위험사회'라는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1986년에 출간했고, 1997년 번역됐다.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나 주목을 받았던 이 책은 세월호 덕분에 일약 대중적 관심을 받았고 벡 교수는 세월호 세미나에 초대됐다. 세월호가 ‘위험사회’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 것이다. 벡에 따르면, 21세기의 위험은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danger)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인 환경과 결합돼 나타나는 재난(risk)이다. 즉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산된 위험’이다.

세월호가 정확히 그러하다. 세월호의 비극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에 의해 좌초한 것이 아니라 ‘생산된 위험’에 의한 것이다. 유가족과 국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사고 후 수많은 승객들을 구하지 못하고 죽게 내버려 둔 것인데, 그것도 불가항력적인 원인 때문이 아니다. 세월호 세미나에서 지적되었듯이,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에 분노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압축근대화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전대미문의 위험사회에 살고 있고, 위험사회에 대한 체감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해 강연에 나선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 교수. 그는 21세기의 위험은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danger)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인 환경과 결합돼 나타나는 재난(risk)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벡 교수는 위험사회의 주요 원인이 ‘조직화된 무책임’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위험에 의해 영향 받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제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선장과 선원,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는 해경, 이들을 지휘할 책임을 방기한 청와대의 ‘조직화된 무책임’이 300여명의 학생들과 승객들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게다가 이 무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해경은 현장도착 시간부터 승객들에게 퇴선명령을 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관저에서 쉬고 있다는 이유로 제 때 사건을 보고하지 않고도 제 때 보고한 것처럼 보고시간을 조작하는 등 은폐공작까지 벌였다.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가 지난 11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 단식농성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 설치 등을 촉구하며 단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왜 구하지 않았니?” 목포신항 부두 입구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린 학생들의 사진 위에 이 같은 글자가 쓰여 있다. 부두 안에는 세월호 선체가 전시되어 있다. 선체는 단순한 선체가 아니라 이윤과 결과만 중시하고 인명을 우습게 여겨온 우리의 ‘압축적 근대화’와 ‘빨리 빨리 문화’에 대한 처절한 고발장이다. 선체의 상처들은 ‘상처투성이인 우리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인건비 절약을 위한 회사의 횡포 때문에 처절하게 죽어간 김용균 사건 등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산업재해와 세월호참사는 다른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다. 그러하기에 어린 학생 등의 원혼이 갇혀있을 세월호 선체를 보면서 이 비극이 우리의 인명경시 문화를 변화시키는 ‘해방적 파국’(벡의 표현으로, ‘파국이지만 해방의 계기로 작용하는 파국’)으로 작동해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탈바꿈’하기를 빌었다.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새월호의 낡은 선체 주변 철조망에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다.

 

그러려면 “이제 교통사고에 불과한 세월호, 그만 떠들라”는 일부 보수세력의 불만과 달리, 우리는 세월호를 잊지 말아야 한다. 벡 교수는 경고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태가 조용해지면 정치인은 다시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겠지만 여러분이 겪었던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닙니다.” 세월호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우리의 불안한, 위험한 미래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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