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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ㆍ책과 생각] 강민혁의 자기배려와 파레시아

주자어류선집 - 미우라 구니오 역주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04270.html

강민혁의 자기배려와 파레시아’ : 강민혁 케이비(KB)국민은행 부장이 철학에서 정치경제학까지 다양한 인문서를 4주마다 소개합니다.

 

네 길을 가라 요통처럼 집요하게

 

강민혁 / <자기배려의 책읽기> 저자, 철학자

 

나는 오랫동안 공자나 맹자 같은 유교를 피했다. 조선 이래 꼰대가 이리 많은 것은 필시 유교 때문일 거라 여겼고, 무엇보다 공맹의 글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찾아와야 할 것들은 반드시 찾아와 내 정신 한 귀퉁이를 핥는다. 우연히 친구들과 <주자어류선집>을 읽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내 인생 반백년 만의 희소식이 될 줄이야. 주희와 제자들이 나누는 공부 이야기가 깨알 재미로 광활한 것이 아닌가.

어느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께 배우려고 멀리서 왔습니다. 선생님, 부디 저에게 제가 가야 할 하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길은 지금 자네가 가고 있는 바로 그 길일세. 어디에 다른 길이 있겠나? 도리(道理)는 사물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지, 어느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닐세.”

주자학에서 만물의 근본은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형체도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무극(無極)이다. 이 태극, 무극이 바로 리(). 리는 존재를 존재로 있게 하는 세상의 이치이다. 이 이치가 작동하면 물질이자 에너지인 기()가 결합해 음양오행을 낳고, 마침내 나무나 사람이 생긴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리는 수천수만개의 리가 되어 나무나 사람들 속으로 헤엄치듯 펴져 들어간다. 이때 나무나 사람 안에 들어간 리를 특별히 성()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은 곧 리다.”(性卽理) 지금 보아도 주희의 존재론은 일급의 절창이다.

사실 주희의 저 답변은 주자학의 금과옥조라 할 리일분수’(理一分殊)의 당연한 귀결이다. 세상의 이치인 리는 궁극적으로 하나지만, 동시에 완전한 채로 만물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일상 모든 곳에 태극, 곧 리가 넘친다. 그러므로 세상사 모든 것이 공부다. 하나의 사물이 있으면 그곳에 반드시 하나의 리가 있다. 주희는 이 길인지 저 길인지 서성이지 말고 무슨 길이든 네 길을 냅다 뛰어가라고 한다. 가는 길에 넘어져도 보고, 헤매기도 하는 중에 리는 그윽하게 다가온다고 말이다. 내 길 위에서 만나는 온갖 사물의 리에 도달하는 노력이 바로 격물(格物)이다. 격물은 분수(分殊)에서 리일(理一)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격물은 바야흐로 치지(致知)로 전진한다. 격물로 얻은 앎을 내 몸에 심어서, 이제 몸으로 행하지 않고는 앎이라고 할 수 없는 단계, 즉 지지(知至)의 경지로 향한다. 격물이 사물을 대상으로 한다면, 치지는 나를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참 묘한 전진이다. 사물의 리를 통해 나의 리를 밝히는 것이니까, 그것은 세상으로 나아가 분투하고, 다시 그 분투를 안고 나에게 귀환한다.

만년의 주희는 병약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주희는 요통이 심해서 신음소리를 내며 문득 이렇게 말했다. “내 요통처럼 공부해야 하느니라.” 이 푸념에 주희의 향기가 듬뿍 담겼다. 간결하게 말하면 격물치지는 새로운 습관의 획득이다. 요통처럼 집요하게 획득한 습관으로 마음과 리가 하나가 된다. 주희의 리는 그리스 철학에서 목적론적으로 지향되는 이데아와도 다르고, 언어적인 진리체계인 로고스와도 다르다. 유별난 것을 찾는 현대의 첨단이 때론 형편없이 낡은 것일 수 있다. 이토록 다른 세계가 정통 속에 숨겨져 있는 줄 나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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