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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4) 재난을 기억하는 것은 상실을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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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90600005&code=940100#csidx9803a0f11b194ab8c1ce062ffd48c38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4)

재난을 기억하는 것은 상실을 위로하는 것이다

 

박현선 |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재난 아카이브 - 모든 것을 무릅쓴 기록들

2016년 발생한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주기를 앞두고 한 시민이 9-4 승강장 앞에서 당시 사고로 숨진 김모군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이 도처에 있다. 매일 호흡하는 공기 속에, 배관을 따라 흘러드는 이웃의 하수 속에, 차가운 광선을 뿜으며 뉴스를 전하는 TV 화면 위에, 고층 빌딩에서 떨어져 내리는 뜨거운 몸들 사이에 재난이 있다. 무엇이 재난을 만들어내는가? 

고대의 재난은 비일상의 영역, 비극과 파토스의 세계에서 벌어졌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로부터 재난을 받은 한 여인이 등장한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다. 7남7녀를 두고 그 어떤 신도 부러울 것 없다고 소리치는 니오베를 신들은 싫어했다. 그녀의 지나친 오만을 꺾기 위해 신들은 자녀들을 하나씩 쓰러뜨린다. 참담한 고통 속에서 니오베는 돌이 되었다. 니오베의 재난은 포에틱하다. 윤리와 교훈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재난은 일상이다. 최근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반도의 85%에 해당하는 대지를 불태웠다. 밤낮으로 사방을 붉게 물들였고 인간과 동물, 곤충을 포함해 십억이 넘는 생명들을 앗아갔다. 

국내의 경우 2016년 울산·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등 재난의 리스트는 더욱 길어지며 반복해서 이어진다. 비단 지진과 산불만이 아니다. 2000년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2009년 용산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 2016년 구의역 청년노동자 사망사건, 그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사건까지 사회적, 국가적, 산업적 재난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8시간마다 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한다.

사람보다 돈, 안전보다 성장 
‘재난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

오늘의 재난은 ‘재난 자본주의’의 민낯을 지닌다. 사람보다는 돈이, 안전보다는 성장이 제일 우선이다. 재난에 대응해야 할 국가의 제도와 시스템은 자본의 이해관계와 유착되어 있다. 재난사태는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 통치를 강화할 좋은 기회다. 재난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란 사회적 신뢰를 벗어버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일이다. 경쟁의 논리가 삶을 다스린다. 오만한 자여, 위대함을 누릴지어다. 약한 자여, 재난을 받을지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재난의 피해자가 되는 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룬 쾌거를 모두 기억한다. 그러나 이 영광의 기억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이다.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이승준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전 세계에 알려 달라’는 유가족의 부탁을 지킬 수 있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두 유가족 어머니들은 ‘아이들과 함께 여기까지’ 올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준비·대처·복구의 지평 너머 
재난의 아픔은 어디로 가나

재난에는 준비와 대처, 복구라는 키워드가 뒤따른다. 그러나 재난에 대한 기억, 그 아픔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강남역 10번 출구와 구의역 승강장 9-4 스크린도어에 붙은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물결을 기억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내가 거기 없었기 때문에 네가 죽었어”라고 말하는 문구들은 재난의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거리에서 실현된 기억의 아카이브였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줄곧 피해자의 위치에 서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들의 아픔을 교감하고 현실의 변화를 요청하는 소리들이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라오스 댐 사고 관련 태국·캄보디아 방한단, 한국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2018년)에서 참석자들이 라오스 댐 붕괴 사고 피해현장 사진을 들고 시공사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재난이 있는 곳에 아카이빙이 있어야 한다. 기록을 담은 장소로서 ‘아카이브’는 과거가 보존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기억이 만들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9·11 테러나 동일본 대지진 등 국가적 차원의 재난이 발생하자 미국과 일본은 각 사건에 대해 디지털 자원으로 수집 가능한 기록물들을 보존하기 위한 웹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국내의 경우는 국립중앙도서관이 구축한 OASIS(Online Archiving & Searching Internet Sources)에서 ‘재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부터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까지 총 37건의 재난사건에 대한 기록과 각종 웹 자원들이 수집·보존되어 있다 

기록물보관소로서 아카이브는 18세기 이래 더욱 유행한 근대의 산물이었다. 권력가들 사이에 아카이브를 향한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욕망이 깊어지고 기억을 보유한 물리적 장소를 소유하고 관리하려는 지배력이 강화되었다. 아카이브의 어원은 그리스어 ‘아르케(Arkhe)’로 ‘시작(Commencement)’과 ‘명령(Commandment)’의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그래서 아카이브를 ‘권력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비판적으로 보았다. 아카이브가 지닌 근원적 정치성을 지적한 말이다. 아카이브에는 온갖 다양한 형태의 기억과 목소리들을 억누르고 하나의 정리된 기록으로 남겨 관리하려는 정치의 욕망이 열병처럼 깃들어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의 한 장면.

 

구의역 승강장 포스트잇 물결 
피해자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거리서 실현된 기억 아카이브
 

그러나 재난 아카이브의 의미는 아카이브 열병이 보여주는 욕망과 다르다.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기 위해 센다이시에 지은 ‘3·11을 잊지 않기 위한 센터’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 기증과 유가족들 간의 소통을 위해 구축된 ‘416기억저장소’, 그리고 경향신문이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구현한 ‘산업재해 아카이브’ 등은 모두 상실이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 

경향신문 인터랙티브 사이트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는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1305건을 전수조사하여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도하며 함께 아카이빙 작업한 것이다. 화면 캡처

 

인상적인 사례로, ‘3·11을 잊지 않기 위한 센터’에 최초로 등록한 1호 기록활동가 다카노 히로유키는 애초에 토목건설회사의 경영인이었다. 그는 지진 직후부터 복구를 위해 쓰나미 피해지역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행위가 지진 피해의 흔적을 지우는 일인 동시에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는 일임을 다카노는 깨달았다. 그는 말없이 피해지역의 거리와 풍경,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재난 아카이브는 기록의 의미를 되묻는다. 상실을 기록한다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나 객관적 기록 너머로 나아가는 활동이다. 다채로운 기억으로 이루어진 여러 기록들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재난 아카이브의 기억은 집합적이다. 우리는 혼자 기억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억한다. 

재난 아카이브는 사람들의 삶에 피해를 유발한 재난의 특성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과 가족, 이웃의 공통된 기억과 아픔도 공유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재난 아카이브는 공동체의 장소이고 애도의 장소이다. 

아카이빙은 자국의 상황과 피해자의 처지에만 제한된 일이 아니다.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에서 구축한 ‘CGSI 풀뿌리 기억저장소’의 첫 아카이빙은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사고를 담은 사진자료들이다. 라오스 참사는 SK건설과 한국 정부가 연루되어 있는 재난이다. 이영란 당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이 포착한 현장 사진들에는 피해 상황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도 담겨 있다. 

‘삶의 피해’ 객관적 기록 넘어 
공동체가 함께 애도하는 공간
기억의 치유는 종결이 있을까
 

결국 재난 아카이브는 살아있는 기억에 가깝다. 역사책은 과거를 기록하고 그 자체로 후세의 평가를 받으면 되지만, 아카이브는 계속해서 새롭게 써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수의 기록활동가들이 피해자의 기억 위에 자신들의 기억을 엮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뼈아픈 질문이 남아 있다. 기록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가. 기억의 치유는 종결될 수 있는가. 시작은 명확할 수 있지만 그 끝이 모호한 재난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기록활동가들에게도 딜레마를 안겨준다. 

어쩌면, 아카이브의 정치성은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는 위험에서 출발한다. 오직 파편적이고 불안정한 자료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기억의 잔여들 속에서 아카이브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상상한다. 재난의 참혹함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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