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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工房 강좌/₁푸코 '81년 루뱅 강의 강독

푸코 '81년 루뱅 강의 『악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다』의 강의정황 (1/3)

Confessio

 

푸코 - 강의록 - 1981 루뱅 강의 - 강의정황 1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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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서양에서 진실을 산출하는 테크닉들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를 받은 것 중 하나가 됐다. 그 이후 우리 사회는 특이하게 고백적인[이상하리만치 고백을 좋아하는] 사회가 됐다. 고백은 그 효과를 멀리까지 미치고 있다. 재판, 의학, 교육, 가족관계, 연인관계에, 가장 일상적인 차원과 가장 장중한 의례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다.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며,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고백하며, 과거와 꿈을 고백한다. … 모든 타인에게는 불가능한 고백을 쾌락과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하며, 이를 책으로 낸다.

― 미셸 푸코, ≪지식의 의지≫, 1976, p.79.

 

루뱅에서 이뤄진 두 개의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신의 투쟁과 책에 대해 말했다. 그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서전의 단편”이며, “광기, 감옥,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개인적 문제”라고 말하기조차 했다. “내가 한 실천 활동과 이론적 혹은 역사적 작업 사이를 왕복하고, 상호 간섭과 상호 접속이 일어나도록 항상 노력했다”고 분명히 말한다. 한편으로, 그가 제기하는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질문들은 “실천과의 즉각적이고 동시대적인 관계를 … 가득 채우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현행적(actuel) 실천과 관련되어 이론적 작업이 법칙[loi,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항상 유의해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결합된 싸움과 관련해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채로 머문다.

그는 “모든 형식과 모든 측면 아래에서 고통을 겪는 인류의 보편적인 투사combattant”도, 대상 일반을 연구하는 주체 일반도 아닌 그는 “자신의 주체성에 있어서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지점에서” 싸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주체적 경험에서 출발하면, “인간의 일반이론”에 기대지 않고 “다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푸코는 대의의 불명료함[내용이 불명료한 대의]에 인칭적 함의를 대립시킨다. 특이한 입장, 특이하게 까다로운 입장이다. 이것은 욕망 주체를 생략하는 것을 거부한다. 욕망의 주체를 용서하고 이를 비우는 방법의 비호 아래에서 이 주체를 인식의 주체와 혼동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은 또한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업(travail)이라는 물음을 모면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 주체는 이런 작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이 물음을 소속의 물음으로 급선회해 버린다.

≪악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다≫는 수많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이 「강의정황」의 집필을 떠받친 것은 하나의 물음에 의해 방향이 정해졌다. 하지만 이 물음도 여러 가지 정식으로 굴절된다. 푸코는 비판에 어떤 임무를 할당했을까? 그의 삶과 저작에서, 그는 정치와 윤리를 어떻게 연결했을까? 정치공동체cité에서 한 명의 철학자라는 것은 그에게 무엇을 뜻할까? 그는 진실의 용기에 어떤 형태를 부여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취하는 출발점은 ≪악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다≫가 기입되는 순환(cycles) 속에서 푸코가 진리의 권력을 어떻게 문제화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로부터 어떤 결과들을 끌어냈는지를 알아차리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작업은 세 개의 전개(developments)를 통해 이뤄진다.

첫 번째 전개는 루뱅 강의를 형사사법justice pénale에 관한 텍스트들의 계열 속에 위치시킨다(푸코는 이에 관해 1971년에는 ‘억압’을, 1981년에는 ‘지배의 기법’을 말한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푸코는 철학자가 제안한 분석들을 “가능한 계보학의 세 가지 영역들” 중 두 번째 영역인 “권력의 장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의 내부에 기입한다. [여기서] 고백은 법·권리상의 진실(le vrai en droit)을 생산하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고백의 너머에는 “과학적 실천과 철학적 담론이 조금씩 자격을 잃게 하고 숨기고 쫓아낸 진리의 모든 테크놀로지”가 있다. 이것이 검증되는 것은 “사건의 차원에서 시련으로서의 진리(vérité-épreuve)”가 어떻게 “인식의 차원에서 사실확인으로서의 진리(vérité-constat)”라는 형식을 취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전개는 ≪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에서 푸코가 억압가설의 쇠퇴épuisement라고 부르는 것을 확인한다. ≪악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다≫는 자기의 기술과 통치의 부드러운 판본으로 이루어진 사이클 속에 위치되며, “우리가 도덕과 맺는 관계의 역사적 존재론”으로 정의되는 세 번째 영역과 계보학의 두 번째 영역의 경첩charnière에 위치해 있다. 관건enjeu은 억압의 이편과 저편에서 어떻게 주체화 자체가 예속화assujettissement를 산출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주체성과 진리≫에서 아프로디시아[aphrodisia, 쾌락]가 그랬듯이, 고백은 하나의 “굴절réfraction의 표면”이다. 이것에서 출발해 자기에 대한 관계의 역사적 양상들modalités가 검증된다. 이런 검증은 “윤리적 실체”, “예속화의 양태mode”, “자기의 실천”, “텔로스[목적]”라는 네 가지 측면 아래서 이뤄진다.

세 번째 전개는 ≪말과 사물≫에서 이미 다뤄진 철학적 문제가 ≪악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다≫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탐지하고 푸코가 이윽고 ≪진실의 용기≫에서 주게 될 해결의 시초를 알아채는 것이다. 즉, 이 강의를 진리술(알레투르기)적 비판의 사이클을 여는 것으로 읽는 것이다. 고고학적 비판과 계보학적 비판을 보완하는 비판이다. 푸코는 고백의 생산형태들의 역사를 통해 ‘주체성-진리’의 형식을 연구한다. 칸트와의 논쟁으로 복귀한 것이다. 「칸트의 ≪인간학≫에 부친 서문」의 편집자들이 지적하듯이, 이 논쟁이 푸코의 “저작 전체에 영양분을 제공할” 것이다. 이를 세공할 때[암암리에], 하나의 물음이 끝나지 않고 주장된다. 즉, 진리가 “[사실이라고]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야기되는 것”이라면, “제시된 명제apophantique를 대신한 생산”이라면, 비판철학이란 무엇일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루뱅에서 너무 짤막하게 불려내진 대답은 프로그램적[강령적]이다. “대항-실증주의. 실증주의의 반의어가 아니라 그 대위법[contrepoint, 대척점]으로서의.”

 

I. 억압과 그 대상

형사사법에 관한 푸코의 텍스트에서 정치와 윤리는 어떻게 연결되었는가? 진리의 권력이라는 문제는 거기서 어떻게 제기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감시와 처벌≫의 저자가 “자주 상황이 진행되는 바에 따라souvent au gré de circonstances” 작업한다고 말했음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가 가담한 싸움이 진행되는 바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또한 들뢰즈에 따르면, 푸코에게 실천은 “이론적인 한 점을 다른 점으로 잇는 중계의 총체(ensemble)이며, 이론은 하나의 실천을 다른 실천으로 잇는 중계”였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그가 ‘프롤레타리아 좌파’(GP) 구성원들의 편에서, 또 ‘감옥정보그룹’(GIP)의 한복판에서 벌인 그의 싸움을 짤막하게 돌이켜보자. 이는 인생에 의해 저작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기물적 총체화의 시도에 굴하지 않고, 그가 이해하는 바로서의 비판철학의 윤리가 무엇을 요청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상황

상황이란 우선 1968년의 학생운동에 대한 억압이다. 그가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곳인 튀니지에서는 시위가 혹독하게 탄압을 받고, 수십 명의 활동가들militants이 투옥됐다. 푸코는 경찰에 쫓기는 학생들을 숨겨주고, 수감된 학생들의 변호사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그들의 재판이 끝난 후에, 푸코는 프랑스 외교부에 자신의 해외 파견 근무를 끝내달라고 요구했다. 그가 돌아온 프랑스에서는 68년 6월에 12개의 의회 밖 좌파 조직에 해산 명령이 내려졌다. 1970년이 되자 정부의 압박은 베니 레비를 필두로 하는 “3월 22일 운동”과 “청년공산주의연합 맑스-레닌주의”(UJC-ml)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마오쩌둥주의 조직인 ‘프롤레타리아 좌파’를 중심으로 옥죄어온다. 같은 해 2월에는 푸키에르-레 랑스(Fouquières-lez Lens) 광산에서 갱내 가스 폭발로 몇 명의 광부가 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염병이 탄광사무국에 투척됐다. 이 사건으로 [프롤레타리아 좌파의 기관지인] ≪인민의 대의≫ 편집자들과 함께, 이 파의 활동가 아홉 명도 투옥됐다. 5월 27일, 전투집단 및 민병대milices privées에 관한 법률에 기초하여 프롤레타리아좌파는 해산 명령을 받는다. 6월 9일, “새로운 형태의 범죄(délinquance)를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법률이 채택되었다. 이 법률은 집단적 책임의 형태를 지정하고, 금지된 집회에 평화적으로 참여했는데도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을 리스크를 낳았다. 거의 200명의 활동가가 투옥됐다. 새 법이 적용된 사례 외에도, 해산된 단체의 재결성을 이유로 한 사례도 있었다. 후자에 관해서는 ≪인민의 대의≫의 판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고 여겨졌다.

프롤레타리아 좌파도 이 억압에 맞선다. 활동을 금지당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계속했다. 첫째, 저항을 확대하고 민주전선을 열기. 조직은 그들의 명성이 체포와 유죄선고의 리스크로부터 보호해주는 지식인을 동원했다. 6월 9일, 보봐르와 레이리스(Leiris)는 ≪인민의 대의≫의 친구모임의 단체규약을 제출한다. 6월 11일에는 ≪인민의 대의≫ 편집장이 된 사르트르가 다른 유명인사들과 함께 투옥된 혁명가들의 변호활동을 위한 “적색구조대”를 재설립하자고 호소한다. 둘째, 사법적인(juridictionnelle) 대항 실천을 전개하기. 화염병을 투척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활동가들은, 1970년 12월에 국가보안법정(Cour de sûreté de l'État)에서 재판을 받는다 ― 그리고 무죄 석방된다. 같은 무렵, ‘프롤레타리아좌파’는 랑스에서 인민법정tribunal populaire을 조직하고 탄광회사를 재판정에 세운다. 검사〔원고의 대리인〕 역할을 맡은 사르트르는 광부들의 죽음에 대한 국가와 광산 경영자들의 책임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의 법정 논고[구형réquisitoire]는 의사와 학생과 엔지니어들이 행한 재조사contre-enquête에 기초한 것이었다. 셋째, ‘정치범’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 담장 안에서는 활동가들이 집회 개최réunion와 출판물에의 접근, 소속 조직과의 소통 등의 권리를 얻기 위해, 탄압을 고발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벌였다. 담장 바깥에서는 세르주 쥘리와 베니 레비가 이끄는 ‘프롤레타리아좌파’의 한 부분인 “정치범조직”(OPP)이 “레닌주의의 전통을 좇아, 재판을 정치적 연설의 무대로 만드는” 것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자크 랑시에르의 초대로 ‘정치범조직’에 합류한 다니엘 드페르의 제안에 따라 푸코에게 하나의 요청이 제기됐다. 랑스에서처럼 조사enquête위원회를 조직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교도소[행형] 시설établissements pénitentiaires에 관한 조사위원회이다. 푸코는 이것에 전면적으로 관여engagement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좌파’가 기대한 것과는 상이한 방식의 관여였다. 관여의 시작부터d'entrée de jeu 그는 탄압과 맹목을 하나의 차원에 통합한다[동일한 차원을 갖고 있다면서 문제 삼는다]. 즉, 첫째는 “68년 5월”이 감옥 쪽을 보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며, 둘째는 탄압에 직면한 활동가들이 다른 수감자들을 그늘 속에 내버려두는 활동의 형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의식〔양심〕과 웅변”이기를 욕망한 열의, “아직 진실을 못 본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하려 하는 열의에도 불구하고, 범죄학 담론의 덫에 사로잡힌 지식인들의 허위의식 때문일까? 일반사범을 정치의식이 없고 게다가 반동적이기까지 한 하층-프롤레타리아로 간주한 맑스의 멸시méfiance와 레닌의 적의감의 원격효과Effet lointain인 걸까? 인민재판justice populaire에 관한 「마오쩌둥주의자와의 논쟁」에서 푸코는 베니 레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 행형체계système pénitentiaire는 지금까지 군대와 식민지화와 더불어 잉여인구의 흡수prélèvement 기능을 맡았으나, 향후에는 그것을 홀로 맡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좌파’와 ‘정치범조직’을 이끈 젊은 철학자 베니 레비는 〔납득하지 못하고〕 맞선다. 연장자인 철학자 푸코는 더 나아가 덧붙이길, 국가장치appareil로서의 형사사법la justice pénale은 주민〔인구〕 속에 “모순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항상 기능했다”고 말하고, 감옥 주위에서 두 번째 성벽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 장벽(범죄, 범죄자, 도둑질, 깡패pègre, 양아치dégénérés, 인간 이하의 존재 등에 관한)”을 들먹인다. 그러나 베니 레비는 〔반응을 바꾸지 않고〕 이렇게 응수한다. 그에 따르면, 주요한 단절은 “한줌의 노동자minorité ouvrière와 … 프롤레타리아화되는 하층민plèbe 사이에 존재합니다. 이 하층민은 지방 출신의 노동자이지, 불량배, 불한당, 싸움꾼이 아닙니다.”

푸코는 여기서 레비의 몰지각을 나무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 후에도, 그러지 않았다. 들뢰즈가 나중에 이에 대해 언급했듯이, 푸코에게 중요한 것은 “주체가 〔사물을〕 보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보는 주체 자체가 가시성 속의 하나의 장소이며, 가시성에서 파생된 하나의 기능”이다. 맹목은, 그가 동맹을 맺은 사람들에게 엄습한 탄압을 맞이해 제기된 문제의 한 차원으로서 생각된다. 맹목, 혹은 더 일반적으로는 가시적인 것의 비가시성, 더 꼬아서 얘기한다면, 이 비가시성의 비가시성에 관해, 푸코는 이미 1966년, 블랑쇼에게 픽션이 보여주어야 한 것은 이 비가시성이라고 적었다. 1972년에 「지식인들과 권력」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인터뷰를 맞이해 푸코는 들뢰즈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근 〔탄압의〕 고조poussée를 겪고 지식인들에게 밝혀진 것은, 대중들이 [사물을] 아는 데 있어서 지식인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중은 완벽하게, 명확하게, 지식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를 더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담론과 이런 지식을 차단하고 금지하고 무효화하는 권력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푸코는 이렇게 덧붙인다. “지식인 자신들이 이 권력 시스템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의식’과 담론의 담지자(agents)라고 하는 관념 자체가 이 〔권력의〕 담론의 일부입니다” 이 분석에서 두 가지 의무가 연역된다. ‘프롤레타리아좌파’와 ‘정치범조직’의 멤버들의 곁에서 이뤄진 푸코의 참여engagement의 형태들은 이런 의무가 결정한 것 아닐까.

 

지식인의 두 가지 의무

한편으로는 유보réserve라는 소극적négatif이면서도 적극적인actif 의무이다. (부정명령의 형태를 취하는) 소극적 의무란, 푸코가 말하길, 지식인의 역할은 “모두가 침묵하는 진리를 말하기 위해 ‘약간 앞에 있거나 약간 곁에’ 자리하는 것이 더 이상 아니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민재판tribunal populaire도 조사위원회도 아니다. 그리고 적극적 의무. 지금 말한 것과 반대로, 경험에 의해 “지식으로서의 의식”을 획득한 사람들이 더 나아가 “주체로서의 의식”을 “차지하고occuper” 자기네의 정보력pouvoir d'information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1971년 2월 8일, 단식 투쟁 중인 옥중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푸코는 감옥정보그룹의 「선언문」을 배포하고 낭독했다. 약칭 GIP. 그는 다니엘 드페르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GP[프롤레타리아 좌파]를 연상시키지만 “그저 I만큼 다르다. 지식인이 도입해야 할 차이로군.” 마오쩌둥주의자들은 유명한 지식인들과 동맹을 맺었다. 한편, 감옥정보그룹은 “종별적 지식인intellectuels spécifiques”에게 호소한다. 투옥된 사람들의 증언을 모으고 유포하기 위해서, “권력 안에서 자신의 지위position를 전복하고, 지식 안에서 권력을 전복할” 태세를 갖춘 지식인들이다. 처음의 “불관용 조사”는 3월과 4월에 열렸다. 조사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제휴시켰다. 의사, 변호사, 사회복지사, 죄수의 가족이나 친척, 죄수 본인 ― 모두 얼마간의 자격으로 감옥에 관한 정확한littérale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쌓인 정보는 감옥정보그룹이 제작한 팜플렛으로 유포됐다. 제휴한 철학자들 ― 들뢰즈, 엘렌 식수, 자크 알랭 밀러, 프랑수아 레뇨 등 ― 은 죽은 문자뿐만 아니라 생생한 문자를 언어로 생각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런 효과에 민감한 것은 대학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연극인과 정신분석가 중에서도 몰입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 실천의 변형이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무가 있다. 지식인의 역할은 “자신들이 권력의 대상이자 도구인 장소, 즉 ‘지식’, ‘진리’, ‘의식’, ‘담론’의 영역ordre에서 권력의 형태들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라고도 푸코는 말한다. 오히려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프롤레타리아좌파의 활동가는 “지식을 듬뿍 갖고 있었다.”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그 지식은 (1972년에 「오이디푸스의 지식」에서 이용된 말을 원용하면) “아쿠에인(ακούειν)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청취écoute의 차원에는 없다. 어떤 명증성이 그들의 눈을 피로하게 했는가,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눈을 피로하게 하고 있는가? 그들은 또한 의지도 듬뿍 갖고 있었다. 그러면 욕망하는 남녀가 속이거나 속임을 당하고 있을 때, 그들은 도대체 어떤 이해관계가 있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지식인들과 권력」에서 들뢰즈가 사용한 말을 원용하면)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무의식적으로 투자[투여]investissements”하고, 자신들의 뜻에 반해[마지못해 하면서] 자신들의 맹목성에 있어서 공모에 가담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경제적·무의식적 투자〔투여〕와 맹목화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전제로 어떻게 말하기가 ― 어떤 말하기 방식과 쓰기 방식을 발명하면 ― 이론적 실천을 실제로 변형시킬 수 있는가? 그것이 비판의 표적일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싸움을 할 것인가이다. 이런 변형에 자기 이탈의 한 형태가 요구된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자기 이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푸코에게 정신분석은 문제가 아니다. ― 자신이 관여된engagée 투쟁 속에서 정치와 윤리를 결과적으로 그리고 엄격하게exigeant 결부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곡예를 부리는 것처럼 진정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véritable tour de force, 1970년 12월부터 1971년 3월 17일까지 이뤄진 콜레주드프랑스의 취임 첫해의 강의를 ‘프롤레타리아좌파’와의 비밀 대화로 읽을 수도 있다. 제기된 문제는 지식의 의지라는 문제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문제, 진리의 의지 ― 서양문명에서 지식의 의지의 역사의 “중심적 에피소드” ― 와 욕망 주체의 삭제élision ― 철학담론과 과학담론에서 진리의 〔성립〕 조건처럼 보이는 것 ― 이다. 푸코는 철학적 담론, 전-사법적 및 사법적 실천〔담론〕, 시적 담론을 검토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이런 탐구를 구실로 삼아, 이렇게 말하며 강의를 시작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을 정의하는 것은 “‘왜 인식하기를 욕망하는가’라는 소피스트적 혹은 소크라테스-소피스트적 질문”의 억압refoulement이며, 이 억압refoulement은 “진리의 양식에 기초하여, 존재를 따라 질서지어져 있다고 칭하는” 명제학적 담론apophantique에서 현실화된다. 이어서 고대 그리스에서 법droit과 진리가 우선 시련épreuve의 이항형식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기술한다. 여기서의 언표는 명백히 행위수행적이며, 경합적agonistiques 의례의 틀 안에 있다. 그 후 사실확인constat의 삼항형식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기술한다. 여기에서의 언표는 겉보기에는 기술적(descriptifs)이지만, 경합agôn을 사법진술로 대체하는 (혹은 대체하는 듯이 보이는) 의례의 틀 안에 있다. 마지막으로 푸코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 대한 주석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 그리고 이는 곡예를 부리는 것처럼 어려운 일tour de force이다. 정화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도시국가가 저지르는〕 범죄자의 배제의 몸짓은 도시국가가 자신을 정의하는 몸짓이며, 이는 소피스트를 배제하는 몸짓을, 욕망 주체의 폐제(forclusion)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배제와 폐제는 철학과 과학이 자신들의 내부에 있어서 무엇인지를,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정의한다.

판별(discrimen, discernement)에서 범죄(crimen)로, 범죄에서 (모든 의미에서의) 억압(refoulement)으로. 푸코는 서양사회에서 거짓인 것과 참인 것의 체계가 금지의 체계와 광기/이성의 대립 체계와 유비적인 배제의 기능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지배의 체계와 접합된다. 이미 봤듯이 푸코는 정치범들을 넘어서서 모든 수감자를 위해 스스로를 동원했다〔활동했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푸코가 겨냥한 것은 ‘프롤레타리아좌파’보다 분명히 훨씬 더 광대한 사람들이다. 이 강의가 말을 건네는 것은 알기를 원하면서도 자기네의 지식의 의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진리란 원인(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이라고 말하는 담론이 상정하는 주체 속에서 스스로를 재인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진리를 구실삼아, 그 영향력 하에서 자신을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는 욕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서는 아주 간결하고 집약되었던 이 이야기를 푸코는, 이 강의에서 출발해서 더 풀어내는 데 몰두한다.

지식인의 첫 번째 의무는 정보를 청취하고 전달하는 실천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줌인에 의해 비밀과 대립된다. 두 번째 의무는 역사의 정치적-인식론적 탐구의 형태를 취한다. 과거 속에서 같은 것을 다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상이한 것, 특이한 것, 우연한 것을 보게 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줌아웃과 확대(plan large)는 필연성의 환상illusion과 대립된다. 실천적 활동의 일환인 “불관용 조사”에 선행하고 또한 이것의 뒤를 쫓아 고고학적 조사와 계보학적 조사가 이론적 활동의 일환으로서 행해졌다. 우리는 감옥을 보지 않은 채 보고 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있다.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수용하고 있다. “수용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수용 가능성의 체계”로 거슬러 올라가, “지식-권력의 게임jeu에서 출발해 그것을 분석”해야 한다. 이것이 “거의 고고학에 가까운 수준niveau”이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것이 재코드화되어 참을 수 있게 되는 출발점을 이루는 명증성을 흔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시스템이 작동시키는 권력 메커니즘의 맹목화하는 힘이 어느 정도이든, 혹은 거기에서 정교화된 정당화가 어느 정도이든” 시스템은 “뭔가의 원초적 권리droit에 의해” 수용되도록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계보학의 수준이다.

1971년 3월,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감옥제도는 많은 사람에게 빙산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범죄자가 있기 때문에 감옥이 필요하다’라는 정당화입니다. 감춰진 부분이야말로 매우 중요하고 매우 가공할 만한 것입니다. 감옥은 사회적 억압répression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 두 개의 숫자를 들어보겠습니다. 그 의미를 철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죄수의 40%는 아직 재판을 받지 않은 피고인[prévenus, 미결수]이며, 약 16%는 이민자입니다.” 1971년 8월에 쟈릴라 하프시아(Jalila Hafsia)가 푸코에게 콜레주드프랑스에서의 향후 계획에 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오래 전부터 제가 관심을 가진 문제가 있습니다. 형벌체계système pénal입니다. …저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아직 27년 동안 가르칠 수 있는데요, 이 문제에 대한 일련의 강의를 할 작정입니다. 27년을 그것에 모조리 다 쓸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필시 몇 년 동안은 그렇게 할 거예요. 친구들 … 과 함께 작은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어찌 말하면 좋을까요? 프랑스의 사법justice, 형벌체계, 행형제도institutions pénitentiaires와 관련해 개입하고 행동하는 그룹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수감자들의 조건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제가 정력activités을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몇 개월, 몇 년 계속되겠죠.” 질문자가 〔눈치 빠르게,〕 푸코가 처음부터 “논리적 담론을 도덕적 담론에 종속시켰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윤리학으로 진격할 것이라고 지적하자마자, 푸코는 이렇게 명확하게 말한다. “현행 사법체계 속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계급이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을 제 눈으로 보고 분명히 하고, 누구든 읽을 수 있는 담론으로 변형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법Justice과 진리

푸코를 온통 사로잡은 문제를 다음과 같은 근사치로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 형벌체계에 맞선 투쟁은 중요하만, 그러나 이 투쟁은 진리 때문에 어렵다. 즉 그는 형벌체계를 또 다른 문제의 토대 위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1968년에 이미, 그는 이 문제가 “정치적 실천에 대해 중요성이 없지 않은” 문제, “과학적 담론의 지위, 행사 조건, 기능, 제도화”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1971년 4월부터, 푸코는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 1회분의 「니체에 대한 강의」를 추가한다. ≪도덕의 계보≫의 저자는 진리를 하나의 효과로서 인식한다고 푸코는 말한다. “예속적이고 종속적이고 이해관계가 얽힌” 인식인 진리가 “참과 거짓의 구별을 제기하는, 항상 갱신되는 기본적인 허위화falsification의 게임”에 의해 산출되는 효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사법justice이란 이 말의 니체적 의미에서 진리의 생산양식 중 하나가 아닐까? 인민재판justice populaire에 관한 「마오쩌둥주의자와의 논쟁」 당시의 푸코가 지적했던 대로, 거기서의 결정은 당사자와 관련해 중립적이라고 여겨지는 재판관에 의해 이뤄진다. 그 결정은 “진리의 어떤 규범에 따라, 그리고 정의와 부정의에 관한 몇 가지 관념에 따라” 내려지며, “‘진실’을 수립하거나 ‘고백’을 얻기” 위한 의례 ― 조사enquête와 감정[규명]examen ― 를 거친다. 재판의judiciaires 실천은 힘force을 법droit으로 변환시키는transmuer 권력, 경찰의 폭력 앞에서의 원한ressentiment을 징벌적/행형적/교도소적pénitentiaire 자명성 앞에서의 찬성assentiment으로 변환시키는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의적인 양심을 필연적인 환상(illusion)으로 대체한다. 그렇다면 소송절차의 흐름에 따라 진리의 효과가 작동하게 된다. 수동성과 몰지각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이 효과를 산출하는 메커니즘을 몰아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의 두 번째 강의인 ≪형벌의 이론과 제도≫는 조사[수사, enquête]의 발전을 연구하고, 〔이와 더불어〕 16세기부터 발달되고 감정examen을 탄생시킨 사회통제의 형태들을 분석했다. 이 강의는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서 묘사된 계획, 즉 “모종의 유형의 지식의 형성을, 그것들을 탄생시키고 떠받치고 있는 사법-정치적 모체(matrix)에서 출발해서 지식의 몇몇 유형들의 형성을 뒤따라가는” 것으로 이루어진 계획의 내부에 기입되어 있다. 이 화두는 1973년의 「진리와 사법적 형태들」에서 다시 취해진다. 푸코는 진리에 관해 내적 역사가 아니라 외적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즉, 과학들의 역사의 형태들 속에서가 사고되고 있는 진리가 아니라, 거기에서는 사고되고 있지 않으나, 실천과 사유를 형성하는informe 진리를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길, 재판의judiciaires 실천은 지식이 그로부터 출발해 형성될 때의 출발점에 있는 실천이며, “새로운 대상, 새로운 개념, 새로운 테크닉”을, 그리고 “주체와 인식주체의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등장시킨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다섯 번에 걸친 이 강연은 두 개의 소송절차 사이의 비교를 전개한다. 한편으로는 이항구조를 한 경합적 소송절차가 있다. 이것은 힘force을 법권리droit로 변환한다[commutateur, 스위치를 바꾸듯이 전환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과 권력의 분리disjonction라는 신화에 의해 정비된ordonnées 삼항구조의 소송절차가 있다. 이것에는 법권리droit에 적합한 진리를 얻는 수단으로서 힘과 법권리droit가 속해 있지만, 이 점은 감춰져 있다. 행위의 진리는 조사enquête의 형태 속에서 산출되며, 범죄자의 진리는 감정examen의 형식 속에서 세공된다.

1975년의 ≪감시와 처벌≫은 “처벌권력이 거기에서 그 버팀목을 취하고 그 정당화와 규칙을 수여받고[맞아들이고] 그 효과를 확장하고 그 터무니없는 특이성을 감추고 있게 되는 현행 과학-사법judiciaire 복합체의 계보학”을 제안한다. 19세기 이후 행위의 진리를 넘어서, 위반자infracteur의 진리가 탐구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범죄자의 진리이다. 감옥은 단순한 법률 위반자를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며, 범죄자는 일련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또는 사회적 결정 모두에 의해 그 [범죄]행위에 연결된다고 한다. “지식, 테크닉, ‘과학적’ 담론이 처벌권력의 실천과 더불어 형성되고 교착된다.” 형벌의 극장에서는 새로운 연극이 상연된다. 줄거리도 달라진다. ― 행위를 재판하지만, “이와 동시에 정념, 본능, 비정상성anomalies, 신체장애infirmités, 부적응, 환경이나 유전의 영향도 재판한다.” 새로운 등장인물 ― 의사, 정신과의사, 범죄학자, 비행자 …. 억압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 이후 범죄자의 진리가 그것을 감추는 베일이 됐기 때문이다. 베일의 씨줄은 과학의 외양을 하고 있다. 더욱이 형벌의 완화가 그 베일의 베일이 된다. 베일의 날줄은 법droit의 외양을 하고 있다. 법원tribunaux과 감옥은 속임수leurre의 제조공장manufactures이며, 거기서는 끊임없이 사실이 진리로 변형되고, 수감자[피구금자]humains détenus라는 것에서 출발해 비행자로 제조된다. 이런 제도들은 일군의 실천가와 이론가를 고용한다. 이들의 지식은 참으로 간주되며 이들의 권력은 올곧다droit고 여겨진다.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이 산출하는 속임수[술책]에 언제나 낚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설령 급여의 형태로든, 이 생산물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등한시하기를 선호한다면, 그것을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이런 작업 전체에다 1981년의 ≪악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다≫는 고백이라는 부분을 덧붙인다. 고백은 1972년에 이미 주목받았으며, 오랫동안 푸코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1975년부터, 그는 사법 시스템의 대부분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말한 것이 증거를 구성한다”는 것에 놀란다. 그러나 “타인을 감싸기 위해서든 다른 잘못으로부터 면제받기 위해서든 누군가가 어떤 것을 스스로 떠맡으려고 한다”는 것도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더 나아가 고문과 다른 테크닉들은 현실[실재]에 맞지 않는 고백을 얻어낼 수 있게 한다. 루뱅에서 검토된 몇 가지 물음에서는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의 메아리[잔향]가 들릴 것이다. 고백에서는 현실에 합치하는 것이 진리의 조건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고백은 진실vrai로 간주되는가? 고백을 진실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언어에서의 참조축의 문제와 사법에서의 고백의 기능의 문제가 합쳐진 문제제기이다. 다른 물음들은 ≪감시와 처벌≫의 연장선상에 있다. 처벌되는 것은 “공격[의 사실]뿐만 아니라 이것을 통한[매개로 한] 공격성이기도 하다. 강간이지만, 이와 동시에 도착이다. 살인이지만, 동시에 충동pulsions과 욕망이다.” 범죄자가 법률 위반자infracteur를 대신했다면, 그리고 자신이 한 것뿐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혹은 그것을 할 수 있었기 위해서는 그가 누군가이지 않으면 안 된다)를 고백해야 한다면, 고백은 “모든 형벌 체계에 박힌 가시, 그 상처, 도주선, 갈라진 틈brèche” 외의 다른 무엇일 수 있겠는가. 고백에서는 진리와 상관적으로 구성되는 주체의 문제화이며, 진리-주체성의 문제화이다.

강의 마지막에, 두 개의 새로운 질문이 열린다. 질문은 이제 재판과정procès de juridiction에서의 고백의 기능이 아니다. “추방의 사회(그리스 사회), 속죄rachat의 사회(게르만 사회), 각인marquage의 사회(중세 말기까지의 서양사회), 우리의 사회인 감금하는 사회”에서의 고백의 기능도 아니다 ― ≪악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다≫는 ≪처벌사회≫에서 제시된 이런 구별을 그대로 채용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푸코의 저작이라는 특이한 진리진술의 과정에서의 고백의 기능이다. 피에르 리비에르에서 파트릭 앙리에 이르는, 살인을 자백하면서도 자신이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를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일련의 주체들에 관한 물음이다. [게다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허사로 끝난 사례도 있다(피에르 리비에르는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그의 눈에는 죽는 것밖에 없다고 비칠 때까지 노력하기 때문이다). 의심할 바 없이 기묘한 물음이다. 그러나 라캉이 난해하듯이 푸코가 수수께끼 같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바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 왜냐하면 푸코는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은 자기 자신에 대해 실현되어야 할 작업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 이런 물음들은 푸코의 비판철학이 형벌체계에 맞선 그의 교전engagement을 넘어서서, 정치와 윤리를 어떻게 묶고 있는가를 분석하기 위한 열쇠를 구성할 것이다.

 

- Fabienne Brion & Bernard E. Harcourt, "Situation du cours", in M. Foucault, Mal faire, dire vrai: Fonction de l’aveu en justice. Cours de Louvain, 1981 (Presses universitaires de Louvain, 2012), pp. 26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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