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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14)
조선인 유골 115구의 귀향…‘식민과 전쟁’ 증언 넘어 평화를 말하다
류석진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연구소는 2020년 봄 ‘조선인 강제노동’ 관련 전시를 포함한 기억 관련 행사를 기획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취소되었다. 다시, 2021년 상반기에 ‘식민지기 강제노동 사진전: 경의선에서 만난 노동자’를 기획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5년 일본·한국·재일조선인 그리고 미국과 호주의 시민이 결성한 ‘강제노동희생자추도·유골봉환위원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홋카이도 강제노동희생 조선인 115구의 유골을, 이들이 조선반도를 떠나 노동현장인 홋카이도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거꾸로 하여, 희생지 홋카이도를 출발, 일본열도를 버스로 종단, 시모노세키에서 페리호로 부산에 상륙, 9월19일 서울광장에서 장례를 치른 후, 경기도 파주 서울시립공원묘지에 납골했다. ‘70년 만의 귀향’이다. 기억의 관점에서 ‘70년 만의 귀향’ 행사의 역사적 배경과 활동들 그리고 현재를 소개한다.
홋카이도 슈마리나이에 세워진 고찰 고켄지(사사노보효 전시관)는 전시하 강제노동의 망자를 추모하며 유골과 위패를 안치해온 역사적 건물이다. 이 전시관은 특히 1940년대 전반부 홋카이도 각지(슈마리나이댐, 아사지노육군비행장, 비바이탄광 등)에서 진행된 강제노동사료와 유골발굴의 발자취를 보존·전시하고, 동아시아 공동워크숍 등 동아시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공간이었다. 아쉽게도 이 건물은 폭설(2019년 2월)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2020년 2월 붕괴되고 말았다.
댐·비행장 건설 현장과 탄광…
낯선 땅에서 피땀을 흘리다가
쓰러져 묻힌 조선인 노동자들
전시관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우연한 계기에 숙명과도 같이 강제노동 희생자들을 조우하게 된 승려 도노히라 요시히코(홋카이도 후카가와 이치조지 주지·NPO법인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대표) 이야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도노히라 스님은 우연히 1970~80년대 광현사 본당 뒤편에서 희생자들의 위패 80여개를 발견하고, 생존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1984년까지 16구의 유골을 발굴하여 광현사에 안치하였고, 1995년 전시관을 개설하였다. 이후 한국학자(한양대학교 인류학과 정병호 교수)와의 만남이라는 계기를 통해 개인적이고 국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던 강제노동 희생자에 대한 유골발굴과 조사는 국경을 넘어서는 동아시아의 시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89년 가을, 미국 일리노이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에서 일본의 보육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이치조지 절 부설 다도시 보육원을 1개월간 참여관찰하고 있던 정병호 교수에게 도노히라 스님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홋카이도 각지에 조선인 희생자 유골이 있고 절 근처의 슈마리나이댐에도 유골이 잠들어 있다. 그리고 꼭 유골을 발굴하여 유족에게 돌려드리고 싶다.” 당시 박사과정생이었던 정 교수는 “저는 머지않아 한국에 돌아갑니다만 대학 교수가 되면 학생들을 이끌고 발굴하러 오겠습니다. 그때 당신은 일본인과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모아주십시오. 일본, 한국, 재일조선인 젊은이들의 손으로 유골발굴을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라고 제안하였다.
필자는 지난 1991년 도노히라 스님을 만나 강제노동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1989년의 약속은 1997년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 그리고 재일조선인 250명가량이 참가한 ‘한·일대학생 워크숍’이 열리며 본격적인 유골발굴과 관련한 사료 정리작업이 이뤄지기 시작됐다. 그 워크숍은 매년 한 차례씩 한국과 일본에서 교대로 개최되면서 일본에서는 유골발굴 작업이, 한국에서는 유족 찾기와 식민지배의 기억들 모으기 작업을 진행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대만과 중국 등까지 참여하는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2020년에는 공간을 확대하여 오키나와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감염병으로 인해 실무위원회만 개최된 상태이다.
우연히 80여개의 위패를 발견한
일본인 승려가 유골 발굴 앞장
이후 한·일 대학생 워크숍 이어
대만·미국 등 시민들까지 참여
1997년 발굴 초기 당시에는 한·일 간의 민간교류가, 그것도 대학생 간의 교류는 지금과는 달리 극히 제한적이었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더욱 제한적이었다. 일주일이 넘는 워크숍 기간 동안 공동의 숙소에서 공동 식사를 하고 같이 발굴작업과 상호 의사소통을 하던 당시, 한국 대학생들은 역사적 피해자임을 앞세우고, 일본 대학생들은 이에 대해 아예 무지하거나 ‘그래서 후손인 내가 무슨 책임이 있는가’ 등 서로 다양한 감정적인 표출만 있었다.
하지만 공동의 경험이 축적되고 가해자이면서 공동의 피해자이기도 한 전쟁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상호 이해의 폭이 깊어졌다. 이 워크숍에 참가한 많은 대학생들은 지금은 30·40대 연령층에 속하고 상호 식민과 전쟁의 기억을 공유하며, 평화로운 공동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고 만들어나가려는 소중한 집단이 되었다.
당시 발굴된 유골의 신원은 밝히기 어려웠다. 별도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대충 이 근처에 희생자들을 매장하였다는 생존 주민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진행하는 정말로 주먹구구식의 발굴작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인 다코베야(문어방이라 불리는 감금숙소) 노동자와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은 비교적 쉽게 구별되었다. 일본인 유골(유품에 숟가락이 없는 경우)은 발굴될 때 얼굴이 전면을 향하고 있음에 반하여 조선인 유골(유품에 숟가락이 있는 경우)은 두개골의 윗부분이 전면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인은 사체를 평평하게 누운 자세로 매장하였음에 반하여, 숟가락이 있는 조선인은 얼굴과 무릎을 포갠 상태로 매장하였던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이 강제노동을 하였어도, 죽음 이후 매장에서 이러한 민족적 차별(매장에서도 이러한 차별이 있었으니 생존 시의 차별은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다)이 있었던 것을 주민들의 증언과 발굴 당시 유골의 형태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어떤 유골은 나름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유품이 같이 나와 유족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나, 대부분의 분들은 광현사 등에 안치할 수밖에 없었다. ‘70년 만의 귀향’은 이렇게 홋카이도 여러 절에 안치되어 있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유골을 모셔온 것이다.
2015년 70년 만에 귀향한 115구
동아시아 ‘평화디딤돌’로 부활
2015년 ‘70년 만의 귀향’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가능했다. 이 행사를 준비하며 한국에서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는 독일 행위예술가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의 ‘걸림돌(Stoplerstein)’을 한국적 맥락에서 재현한 ‘평화디딤돌’(독일어 걸림돌의 의미는 길을 걸어가다가 발에 걸려 길을 내려다보게 되면 여기 주민이었던 유대인이 언제 어떻게 희생되었다는 표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살리자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라는 표현보다는 평화를 위한 디딤돌이라는 명칭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모임이 결성되었고, 강제노동 희생자를 추모하는 디딤돌(‘이 동네 사람 ○○○, 탄생일-사망일(나이), 주소, 일본 홋카이도 ○○○○ 강제노동으로 희생’)이 희생자의 탄생지 혹은 거주지에 설치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전시관은 폭설로 2020년 2월 붕괴됐다. 전시하의 파시즘과 군국주의 시대에 일어난 증오와 가해의 역사를 기억하고, 동아시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장소로는 좁지만 큰 의미를 가지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한·일 시민단체의 모금 운동이 진행 중이다. 도노히라 스님은 강제노동 희생자와 자신의 관계를 다룬 개인사를 <유골(遺骨): 말을 걸어오는 영혼의 목소리>라는 단행본으로 출판해 한국어 번역 작업이 진행 중이다. 동아시아의 비극적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시냇물이 큰 강을 만들 듯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앞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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