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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16) 광장 곳곳에 숨쉬는 장제스, 죽어서도 작동하는 불멸의 권력

by RGCPP-gongbang 2020.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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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042123005&code=960100#csidx9201bc88d6c532a8a0c01e2b2de9d6f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16)

광장 곳곳에 숨쉬는 장제스, 죽어서도 작동하는 불멸의 권력

 

정헌주 |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대만의 중정기념당

1980년 세워진 중정기념당은 장제스를 기념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억공간으로 타이베이시 중심부에 자리해 있다. 지난해 4월5일 중정기념당 본당 앞에서 장제스 44주기를 추모하는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정헌주 교수 제공

 

타이베이 도심 광활한 부지 위
중정기념당의 청동 동상이
지그시 대중을 내려다본다

2019년 1월부터 8월까지 연구년 동안 대만 타이베이에서 지냈다. 머물던 숙소에서 연구공간이 있던 국가도서관까지 가기 위해서는 중정기념당을 가로질러야 했다. 타이베이시 중정구에 위치한 국립중정기념당(國立中正紀念堂)은 1950년부터 1975년까지 중화민국 1~4대 총통을 지냈던 장제스(蔣介石 또는 蔣中正)를 기념하고 기리는 공간이다.

대만에는 중정기념당뿐만 아니라 장제스와 관련된 다양한 기억공간이 존재한다. 장제스와 부인 쑹메이링이 거주하였던 스린관저, 장제스가 묻혀 있는 츠후능묘, 그의 동상을 모아놓은 츠후기념조소공원 등이 있다. 또한 타이베이를 비롯한 대만의 도시, 거리, 학교, 건물 등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제도, 규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장제스의 자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장제스와 관련된 다양한 기억공간 중에서 복잡한 타이베이시 중앙의 광활한 부지 위에 건축된 중정기념당은 그를 기념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억공간이다.

장제스에 대한 공식 기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본당에 위치한 장제스 청동좌상과 좌상을 둘러싸고 벽면에 새겨진 그의 글, 1층의 전시실을 봐야 한다.

국기 게양·하강과 위병교대식
매일 매 시간 기념되는 장제스
국공내전 패배는 망각되고
한 신성한 권력만이 기억된다

여기에는 장제스의 생애와 업적, 그가 쓴 글과 편지들, 사건의 연대기적 재구성과 설명 패널, 사진,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동시에 이곳은 국공내전의 패배, 권위주의적 통치, 다양한 정책 실패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망각한 채 장제스에 대한 공식적인 기억을 구성하고 이를 관람객에게 투사한다. 중정기념당은 1980년 건립된 이후 장제스와 그의 논쟁적 유산에 관한 공식 기억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총통부 등 다양한 권력기관들이 위치한 타이베이 중심지 한가운데에 있다는 점에서 대만에 산재한 다양한 기억공간의 위계적 질서 중에서도 최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다.

중정기념당이 차지하는 기억전쟁에서의 핵심적 위치는 대만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 공고해졌다. 건립된 지 10년 후인 1990년 3월16일, 이곳에서 들백합학생운동(野百合學生運動)이 꽃을 피웠다. 계엄령 해제 이후 최초의 대규모 학생시위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6000여명의 대학생들은 중정기념당 광장에서 국민대회 해산, 임시조례 폐지 등 민주화 요구를 제시하였으며, 당시 리덩후이 총통은 이를 수락하였다. 들백합학생운동은 대만의 민주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이후 2008년 산딸기학생운동, 2014년 해바라기학생운동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총통 선거가 채 1년이 남지 않았던 2007년, 중정기념당에서 재현되는 공식 기억은 가장 큰 도전을 맞게 되었다. 당시 천수이볜의 민진당 정부는 ‘정명운동(正名運動)’을 추진하였다.

중정기념당 본당에 위치한 장제스 청동좌상. 정헌주 교수 제공

 

2007년 민진당 정부 당시
민주기념관으로 바뀌었던 이름
대만의 새로운 미래를 기념할
새 이름으로 다시 바뀔 수 있을까

중정기념당 현판은 2007년 5월 ‘국립대만민주기념관(國立臺灣民主紀念館)’으로 바뀌었고, 중정기념당의 대문 역할을 하는 입구 상단의 현판 글씨도 ‘대중지정(大中至正)’에서 ‘민주광장(民主廣場)’으로 변경되었다. ‘대중지정’ 현판 글씨는 중용에서 인용되었지만 사실 중정(中正)을 의미하였다. 2008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국민당 마잉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민진당 정부는 기억전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후 마잉주가 총통으로 당선된 후 국립대만민주기념관은 다시 중정기념당으로 개칭되었지만, 현판 글씨는 현재까지 그대로 민주광장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장제스에 대한 공식 기억의 장으로서 중정기념당과 이에 대한 도전은 과거에 대한 기억투쟁임과 동시에 대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투쟁이다. 하지만 장제스와 중정기념당에만 초점을 둔 이러한 해석은 중정기념당이 갖는 정치적, 상징적 의미를 오히려 협소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중정기념당과 주변 공간은 단순히 장제스를 기념하는 공간을 넘어선 다른 차원에서의 기억전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지도자를 기념하는 다른 공간과 비교하였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기억공간, 대표적으로 미국의 대통령기념관 등은 지도자의 인간적 유한성과 역사적 불멸성을 동시에 표상한다. 이러한 공간들과 중정기념당의 가장 큰 차별점은 다양한 장치를 통해 죽은 권력자인 장제스의 권력이 현실에서 행사된다는 것이다. 즉, 살아 있는 권력자만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의례를 통해 여전히 장제스로 표상되는 국가권력이 작동되고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상기시킨다.

이러한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정기념당 내부에서 매시간 개최되는 위병 교대식과 외부에서 매일 행해지는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이다. 3군 의장대 소속 현역 군인 5명이 직각도보를 하면서 이동하고, 중화민국 국가(國歌)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식이 엄숙히 거행된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대만인과 관광객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방문객들의 움직임을 통제한다.

의례의 신성성은 아이들의 움직임과 이를 통제하려는 어른들의 행동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아직까지 이러한 의례의 사회적 의미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대개 의례와 상관없이 시끄럽게 떠들고 부산히 움직인다. 이때 주변 사람들은 아이들을 잘 훈육하지 못한 부모를 책망하는 듯한 눈짓을 주고 또 부모는 아이를 조용하게 하지 못해 죄송해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를 통해 그러한 의례의 사회적 의미는 재생산되고 재확인된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을 멀리서 지그시 바라보는 중정의 청동동상은 그의 권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꼭 봐야 하는 관광거리가 된 중정기념당의 청동동상을 지키는 위병의 교대식과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을 통해 중정기념당에서 기억되고 기념되는 장제스와 대만이라는 국가, 그리고 권력의 작동이 뒤엉키는 스펙터클이 연출되는 것이다.

정치적 지도자를 기념하는 다른 나라의 여러 기억공간에서도 지도자와 국가를 연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연출을 볼 수 있다. 중정기념당은 이러한 연계를 보다 직접적, 구체적, 일상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그러한 연계를 당연하게 만든다. 장제스의 불멸성은 중정기념당 내부에서 재현될 뿐만 아니라 더욱 강력하게는 외부에서 장제스와 중화민국의 직접적 연계를 통해 이뤄진다. 중화민국의 다양한 상징과 의례들이 중정기념당 안팎에서 발현됨으로써 국가와 지도자는 필연적으로 연계되고 이를 통해 장제스의 불멸성은 더욱 확고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정기념당은 대만의 국가·시민 관계를 반영하고 투사하는 상징공간이다. 장제스를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은 장제스에 대한 기억과 현실의 국가를 연계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기억전쟁이 전개되고 있음을 은밀히 보여준다. 중정기념당을 둘러싼 기억, 갈등과 경합은 장제스 개인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대만이라는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둘러싼 그것이다. 하지만 중정기념당을 둘러싼 기억투쟁에서는 장제스 개인과 그의 유산에 대한 논쟁이 또 다른 기억투쟁 및 그 가능성을 압도한다. 이는 대만의 기억전쟁에서 중정기념당이 차지하는 패권적 지위가 여전함을 방증하고 있다.

대만을 떠나기 전 수없이 보았던 중정기념당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중정기념당이 다시 국립대만민주기념관으로,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을까? 중정기념당 경내 국가음악청 처마 밑에서 K팝 음악에 맞춰 땀을 흘리며 군무를 추고 있었던 젊은 청년들에게 이곳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대만의 새로운 미래, 또 다른 미래를 위한 노력과 갈등의 과정에서 중정기념당은 대만 사회가 언젠간 다시 거쳐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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