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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17) 진실 호도 ‘피해자 코스프레’ 우려…법보다 강한 무기는 문화적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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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82132005&code=960100#csidxeafeb9cc915de0a9b88b5ec814f1c36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17)

진실 호도 ‘피해자 코스프레’ 우려…법보다 강한 무기는 문화적 제재

 

이소영 |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역사부정죄’ 입법

지난해 문제가 된 ‘5·18망언’처럼 역사왜곡을 둘러싼 논란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3월 ‘5·18시국회의’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5·18망언 관련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국회 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역사왜곡처벌법이 입법될 경우
그 속성을 역이용하는 이들에겐
홀로코스트 부정자 ‘어빙’처럼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기는 싸움

지난해 초 국회의원 3인의 ‘5·18망언’이 사회적 공분을 산 바 있다. 이들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허위주장을 펼치고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낸다’는 희생자·유가족 비하 발언을 공공연하게 했다. 역사왜곡 발언으로 파장이 인 것은 이 일만이 아니며, 몇몇 종편 채널에서 북한군 광주 침투설을 내보내거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로 대표되는 극우 성향 사이트에서 5·18 유공자의 관을 택배상자에 빗대어 조롱한 사건 등이 문제되어 왔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강제동원 부정론을 펼친 책 <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주로 극우 정치세력에 의해 발화되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를 통해 유포되는 역사왜곡에 맞서 ‘표현하지 말아달라고 할 권리’, 더 나아가 ‘역사적 상흔에 관해 (비)웃지 못하게 할 권리’가 제기되어 왔다. 2005년 발의된 ‘일제강점하 민족차별 옹호행위자 처벌법안’을 기점으로 식민기억 왜곡, 반인륜범죄 및 민주화운동 부정 등을 처벌 대상으로 한 법안이 그간 십수건 입안되었다. 21대 국회에 들어서며 재차 발의된 상황이다.

역사왜곡에 대한 법적 처벌의 주요 논거 중 하나는 그것이 소수자 차별과 착종해 있다는 것이다. 네오나치의 예에서 보듯 이는 피해생존자가 속한 집단에 대한 혐오를 공고화하여 안위를 위협하는 데까지 이어지며, 그런 점에서 혐오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논지다. 주류집단의 특정 발언이 소수자의 자유와 안위에 대한 공포일 수 있음은 분명히 맞다. 몇 해 전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나 덴마크 이슬람 풍자만화 사건에서 보았듯, 서구사회에서 교회의 권위에 대한 조롱은 풍자의 대상일 수 있을지라도 이슬람에 대한 조롱은 일상적 적대와 인종주의로 상처 입은 무슬림에게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소수자 혐오와 차별은 반드시 규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한다. 하지만 역사부정죄 입법은 효용보다 부작용이 클 것이라 우려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식민지배와 민주화운동 왜곡 발언은 혐오표현의 경우와 성격이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부정자는 -과거 독재정권에서 폭력적으로 진실을 은폐했던 정치세력의 경우와 달리- 조작된 공식기억이 주변화된 대항기억들을 억압하는 구도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아니, 그럴 역량이 없다고 보인다. 그보다는 특이하고 기형적인 기억주장이 공식기억의 역사 재현을 훼방 놓는 구도에 더 가깝다.

5·18민주화운동의 경우 광주청문회(1988), 5·18특별법(1995), 5·18국가기념일 제정(1997),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진상규명(2007),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2011)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민항쟁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대법원 판결을 통해 ‘민주화 요구에 대한 쿠데타 세력의 탄압’을 법의 언어로도 명시화했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는 국내외에서 공식역사로 자리 잡았다. 식민시기 역사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시민교육에서나 대중문화에서나 식민지배의 폭압을 부정, 찬동 또는 사소화하는 언행은 일반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진실 자체가 아닌
정치적 선동과 편 가르기로
집단의 공식 기억을 훼방 놓는 것

그러니 역사왜곡처벌법이 신설되어 형사법적 규제가 가해진다면 역사부정자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공식기억에 의해 억압되고 재갈 물려졌다고 항변하며 도리어 소수자를 자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우리의 (왜곡된) 기억도 법으로 보호해달라’ 요청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2005년법(la loi n·2005-158)’이라 불리는 프랑스 식민통치 관련 역사기억법이 그 예이다. 이는 홀로코스트 부정을 처벌하는 가소법(1990)과 제국주의 시절의 반인도적 행위 부인을 처벌하는 토비라법(2001)의 제정 이후, 구 프랑스령 알제리의 식민통치 관련자들이 자신의 ‘다른’ 기억도 법으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한 사안이다.

법 제정을 주도한 한 축은 식민통치 시절 알제리에 정착해 살던 프랑스인들의 후손인 피에 누아르(pied-noir)였고, 다른 축은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에 복무했던 알제리인들인 하르키(harki)였다. 피에 누아르는 식민지에서 자신들이 전형적인 잔악한 제국주의자와 달랐음을 주장하며, 이에 대한 왜곡을 법으로써 규제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알제리 민족해방전쟁 당시 프랑스 편에서 싸웠으나 알제리 독립 이후 프랑스 정부로부터 외면당하고 고초를 겪은 하르키 집단은 공식역사 안에 순국선열로 위치 지어지길 원했고, 공동체가 그렇게 기억할 의무를 법에 명시하길 바랐다. 알제리 식민역사에서 이들은 부역자이자 배반자였지만 프랑스 역사기억법에서는 희생자 카테고리에 안착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듯 저마다 법적 규제를 무기로 사용하는 기억전쟁에서, 가령 우파가 북한남침설 부정을 법으로 금지하자고 주장하거나 민족영웅에 대한 다른 해석을 집단기억 훼손의 반민족행위로 처벌하자고 강변할 수도 있다. 재작년 폴란드에서 논란이 된 홀로코스트법은 이것이 단지 가설만은 아님을 시사했다. 유대인 학살에 폴란드인이 협력했거나 관여했다고 발언함으로써 나치 독일의 희생국으로서의 폴란드 위상을 부정하는 언행을 규제하는 이 법은, 트라우마적인 역사에서 각자 자신이 피해자 위치를 점하기 위해 법을 끌어오는 문제적 상황을 야기한다.

역사적 상흔을 겪지 못한 세대가
어떻게 사회적 기억을 갖게 할지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
그들의 왜곡이 입힌 내상은
지속·생산적인 반론으로 맞서야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한 장면. 홀로코스트 부정 혐의로 실제 재판정에 선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티캐스트 제공

 

‘피해자 되기’를 통한 역사부정자들의 반격은 발의된 법안이 통과되어 법정 다툼이 발생할 때 배가될 것이다. 법학자 홍성수도 지적했듯, 소송은 태생적으로 사회의 다양한 논점을 합법 대 불법, 승자 대 패자라는 이항대립으로 몰아간다. 어떤 역사왜곡 표현이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하여 그것이 곧 해당 표현의 옳음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행법 규정에 의거할 때 불법은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선고되면 사회는 마치 해당 표현의 정당성 내지 무해성이 공식적으로 입증된 양 인식할 수 있다. 한편 유죄를 언도받는다 하더라도 피규제자는 이로써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피해자로 스스로를 위치 지을 논거를 하나 더 갖게 된다. 홀로코스트 부정 혐의로 오스트리아 재판정에 서서 실형을 언도받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역사가로서의 본인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주목받으며 세계 각국 부정론자와 음모론자의 영웅으로 부상한 영국 역사작가 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의 경우가 그러하다. 만일 그가 원했던 것이 언론의 관심과 허명이었다면 그는 기소됨으로써 원하는 바를 이룬 셈이다. 이 구도에서 재판은 역사부정자에게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기는’ 싸움일지 모른다.

역사왜곡 세력의 악의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들의 관심은 많은 경우 객관적 진실 자체에 있지 않으며, 적대적인 정체성을 부여할 집단을 구성해내어 거기에 지역주의를 덧씌우고 반공주의를 잠입시키려는 정치적 선동과 편 가르기에 있다. 바로 그렇기에 필자는 그 악의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처벌 ‘법’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보았다. 이는 역사부정자로 하여금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게 만들고, 집단기억과 배치되는 본인의 기억 또한 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소수기억이라 항변할 여지를 주며, 재판정에서 법정 다툼의 속성을 역이용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의 게슈타포, 나치 친위대 본부 자리에 세워진 상설 전시공간 ‘테러의 지형학’은 홀로코스트 가해자의 죄상을 고발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반인도적 범죄의 부정·왜곡·사소화를 이미 처벌하는 다수의 유럽 국가들 역시 근래 희생자의 위계화나 피해집단 간 기억의 각축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구 소비에트 국가폭력 및 아르메니아인 학살 피해자 측과 ‘홀로코스트 유일성’을 강변하는 측이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우리 상처도 너희만큼 크고 아파’와 ‘너희 상처는 우리의 그것과 비할 수 없어’의 대립각을 세우는 사안들이 그 예이다. 이에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역사왜곡처벌법이 역사적 진실을 형사처벌의 위협으로 강요하는 것이라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 글은 역사부정죄 입법의 문제점을 조명하는 데서 그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의 질문은 여전히 남겨져 있다. 피해자가 특정된 경우 현행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적용 가능하며, 특히 유가족이 생존한 사안에서는 집단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을 가능한 한 넓게 인정하여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역사부정자가 기억공동체에 입힌 내상의 경우 공론장의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반론 제기와 문화적 제재로 맞서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역사적 상흔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후속세대가 어떻게 건강한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 갖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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