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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향한 진짜 전쟁
맘스베리의 히드라, 극악한 리바이어던, 영국의 야수, 불경한 죽음의 전령, 옛 이교를 신앙으로 만든 탕아, 가짜를 파는 악당. 17세기 비판자가 토머스 홉스를 두고 퍼부은 저주들이다. 당대에는 불경한 사기꾼으로, 현대에는 전체주의의 괴물로 여겨지는 홉스. 어쩐지 그는 창고에 처박아 봉인해야 할 사람처럼 보인다.
홉스의 기묘한 세계로 날아가 보자. 인간은 운동하는 물체다. 하느님마저 물질로 환원된다. 생각이나 감각도 외부 물체에 자극받아 신체 내부에서 운동한 결과다. 운동의 동력은 자기보존. 욕구와 혐오란 자기보존을 위해 외부 물체와 가까이하려는 운동과 멀리 떨어지려는 운동을 말한다. 경쟁이 격화되어 욕구와 혐오가 봇물 터지듯 터지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the war of every man against every man) 상태가 되고 만다. 홉스의 자연상태는 상호작용하는 미세 입자들의 존재론이 만들어낸 끔찍한 수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보존 때문에 전쟁의 수렁에 빠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기보존 욕구가 참혹한 상태의 자신을 가장 유리한 행위로 이끌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살려는 욕구가 인간들의 전쟁을 그치게 하고 평화의 조약을 맺도록 촉발한다.
묘하게도 공포와 욕구라는 정념이 이성을 이끌어 자연법에 다다른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평화를 추구하라”라는 기본자연법, “평화와 자기방어가 보장되는 한 상호 간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주권자로 승인한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라”라는 제2의 자연법, “신의계약(Covenant)을 맺었으면 지켜라”라는 제3의 자연법 등등. 홉스는 정념과 이성으로 수렁을 돌파하고 새로운 사회체를 발명해낸다. 그는 사회 계약으로 탄생한 이 국가를 가상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묘사하고, 그 실존을 ‘코먼웰스’(Commonwealth)라고 불렀다.
갈릴레이와 기하학의 숭배자 홉스가 만들어낸 이 발명품은 완벽한 구조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괴한 세계가 그려낸 전쟁과 평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셸 푸코는 홉스가 오히려 자연상태의 전쟁이 아니라 현실의 전쟁들, 그러니까 잉글랜드 안에서 벌어지는 시민 투쟁의 내전들을 쫓아내려 했다고 지적한다. ‘왕당파’를 무찌른 ‘의회파’가 곧 ‘장로파’와 ‘독립파’로 양분되고, 여기서 승리한 ‘독립파’에서 ‘수평파’가, 이어 ‘개척파’가 떨어져 나오는 잉글랜드 내전의 끊임없는 분열 앞에서 홉스의 절대 주권 이론은 그 현실의 반란들을 덮으려 했을 뿐이다. 그는 주권을 정초하는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가상적 주권 탄생 이론을 만들었다.
위장된 구조물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 오히려 진실은 기하학적인 괴물, 리바이어던의 발바닥이나 등 뒤에서 우글거리는 삶의 전쟁들에 있다. 그것은 보호와 복종으로 주권 권력을 정당화하는 가상 전쟁이 아니라, 차별에 맞서서 가장 낮은 곳에서 벌어지는 평등의 전쟁들이다. 그러니까 홉스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다”라고 했던 전쟁상태는 지금 여기 실존한다. 차별금지법, 중대재해법 제정 등 삶을 향한 진짜 전쟁이 정파들의 가상 전쟁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눈을 돌리고 손을 내밀어 보자.
<자기배려의 책읽기> 저자,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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