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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ㆍ책과 생각] 강민혁의 자기배려와 파레시아

주체의 해석학 -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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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i.co.kr/arti/culture/book/976831.html?fbclid=IwAR38qoOvHLWK0nRTURq38TcwqemNQMOrWOhQI36SoSNAC6CtCAqRww9GhoI

 

신체의 길에 박힌 자기배려의 로고스

 

주체의 해석학 / 미셸 푸코 지음, 심세광 옮김 / 동문선(2007)

 

영성, 양생술, 죽음의 수련,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이 책은 자기계발서나 명상서에 나올 법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푸코는 자기배려를 활쏘기에 비유하면서 자기 주변에 공(空)을 만들고 소음으로 정신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행위라고도 말한다. 나는 존재가 흔들릴 때 이 책을 만났다. 나비는 이리저리 날아도 꽃송이를 잘도 찾는데, 내 세상일은 엉망이 되고, 급기야 내려앉을 몸마저 망치고 있었다. 묵묵부답인 삶을 앞에 둔 그 시절, 나는 이 책으로 삶을 견뎌냈다.

‘백미러’로 바라본 푸코의 삶에는 여러 길이 고여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푸코는 권력의 예속화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해 왔다. 규율권력, 사목권력, 생명관리권력 등 권력장치(dispositif de pouvoir)는 우리를 규정하는 힘을 예리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갑자기 198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그리스-로마의 자기 수련 기술들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으로 회귀’ 같은 말들은 개인주의적 퇴행으로 여겨져 뜬금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개는 다르지 않다. 전자의 ‘통치성’ 주제들은 외부에서 주체 쪽으로 가해지는 힘과 배치에 관한 탐구다. 반면 후자인 ‘자기’ 주제들은 주체 쪽에서 외부에 대항하는 힘과 배치에 관한 탐구다. 즉, 통치성은 주체에 대한 지배기술이고, 자기배려는 주체의 자기기술(technique de soi)이다. 현실의 개인은 이 지배기술과 자기기술이 교착되는 지점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배려는 안심입명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진실게임과 함께 혹독하게 수행된다. 여기서 진실게임이란 사전에 존재하는 절대 진실이 아니라, 여러 관계와 여러 수준에서 다양한 진실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어떤 진실이 구성되는 순간 권력 관계가 생성되고, 개인은 대가를 지불하며 새로운 주체가 된다. 결국, 이 게임의 장에서는 진실 말하기, 즉 파레시아가 핵심이다. 파레시아를 통해서라야 진실이 드러나고 주체가 변형되는 자기배려의 지대가 열린다.

따라서 고대의 수련 행위들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놓인다. 자기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타자와 관계 맺으며 발생한다. 이것조차 변화하는 권력-관계이다. 예컨대 플라톤의 에로스는 단순한 성애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더불어 진실을 향해 나아가며 끊임없이 자기를 변형시키는 윤리적 파레시아이다. 고대의 수련 기술은 새로운 공동체와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생산인 것이다.

또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은 상호적 파레시아로서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며 자신을 고양하는 삶의 양식이다. 또 스토아학파의 아스케시스(단련)에서 자기는 작업을 가하는 주체이자 작업이 가해지는 객체로서 새로운 삶을 생산하는 기계다. 여기서 자기배려는 외부에 대항해 자기에 대한 주권을 신체에 확립하는 훈련이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고대의 진리는 우리의 통념과 달리 참으로 육체적이다.

언젠가 뒷산에 오르다, 길 속에 박혀 있는 등산화 밑창을 보았다. 마치 길을 가다 스스로 길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푸코는 저 밑창과 같다. 길을 찾아 걷다 결국 자신이 그 길이 되어 버렸다. 자기배려의 로고스들도 파레시아의 길을 돌고 돌아, 내 신체의 길에 박히는 것이다.

강민혁. <자기배려의 책읽기> 저자,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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